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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병원이라는 이름의 수용소 / 홍은전

등록 2020-03-16 18:30수정 2020-03-17 09:41

홍은전 ㅣ 작가·인권기록활동가

멀쩡한 생명을 가두고 때때로 전시한다는 점에서 장애인 시설은 영락없는 동물원이다. 3년 전 정신장애인 요양시설의 인권 실태를 조사하는 일에 참여했었다. (꽃동네 같은) 신체장애인 시설이 아닌 (청도대남병원 같은) 정신장애인 시설은 그때 처음 가보았다. 그곳에서 김진숙을 만났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면담은 7명이 같이 지내는 그의 방에서 했다. 그가 직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나는 방문을 닫아주었다. 창문이 뚫린 그 문의 잠금장치는 방 안이 아니라 방 바깥에 달려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동물원의 철창 안으로 들어간 셈이었다.

서류엔 조현병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그는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2001년 입소해 16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제가 잠을 자지 않았나 봐요. 차 타고 와보니까 여기였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것도 여기서 들었어요. 두달 동안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어요.” 느리고 또박또박한 말투가 일곱살 아이처럼 무고했으므로 가슴이 저릿했다. 그가 구사하는 문장의 주어 자리엔 그가 없었다. 내가 외출할 수 있나요, 하고 묻자 그는 네, 집에서 연락이 오면요, 했다.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나요, 하고 물었을 때도 그는 네, 라고 대답했다. 단호박샐러드를 좋아한다기에, 그럼 그걸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나요, 하고 묻자, 그가 조그맣게 웃으며 그럴 순 없죠, 했다.

그런 식의 질문과 그런 식의 대답이 반복되자 나는 내가 너무 바보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창 안에선 그가 나보다 훨씬 상식적이었다. 그곳은 중력이 다른 행성 같아서 철창 바깥의 규칙이나 가치, 이를테면 인권 같은 것은 우습거나 위험하게 느껴졌다. 그 보이지 않는 힘에 지지 않기 위해 나는 힘껏 외치듯 말했다. “김진숙씨는 퇴원 심사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읊조리듯 말했다. “퇴원하면 좋겠죠.” 그는 마치 남의 이야길 하듯 무심했고 나는 몹시 무안했다. 그가 나의 손을 덥석 잡으며 제발 나를 꺼내주세요, 하면 어쩌나 긴장했는데 기우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좋아요. 내가 다녀본 병원 중에 제일 좋아요.” 그 방 안에 고인 이상한 평화가 무덤 속의 것처럼 기괴하게 느껴졌다.

평화가 깨진 것은 뭐가 제일 힘드냐고 내가 물었을 때였다. 동생들이 찾아오지 않아요, 하기에 별 뜻 없이 되물었다. “동생들 보고 싶으세요?” 그러자 김진숙이 말없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점점 매서워지더니 한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슬픈 분노 같은 것이 서려 있던 그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이라면 안 보고 싶겠어요?” 나는 사랑도 그리움도 모를 것 같으냐고 원망하는 얼굴이었다. 상처받은 얼굴로 그가 조금 지친 듯이 말했다. “나가고 싶다고 계속 말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오래 살아야 한대요. 아버지는 늙었고 동생들하고는 같이 살 수 없대요.” 꼭 듣고 싶은 말이었는데 막상 듣고 나니 울고 싶어졌다.

정신장애인 시설은 동물원이 아니라 교도소에 더 가깝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들의 장애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전시에 적합하지 않고, 전시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아버지는 늙었고 동생들과는 함께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연쇄살인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 아주 높은 확률로 그는 거기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 그것을 자연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를 보고 온 날, 나야말로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명백한 연쇄살인을 방조하는 죄인처럼 끔찍한 기분이 되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인해 청도대남병원 폐쇄병동의 문이 열렸다. 첫 사망자는 20년 넘게 그곳에서 지낸 60대의 남자였고 사망 당시 그의 몸무게는 고작 42㎏이었다. 병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그들을 가두는 것이었고 갇힌 사람들의 몸을 숙주 삼아 돈이라는 바이러스가 국가에서 병원으로 이동했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던 대남병원 확진자들이 완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반가워야 하는데 별로 그렇지 않다. 그들이 돌아갈 일상이 극악한 재난 현장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장기화 전망보다 두려운 것은 그들의 소식이 뉴스에서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시설이나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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