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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해월과 경허 그리고 전염병 / 고명섭

등록 2020-03-22 16:18수정 2020-03-23 02:36

19세기 서세동점의 양상을 보여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서쪽에서 들어온 호열자, 곧 콜레라의 대유행이었다. 이 괴질은 100년 가까이 조선 땅을 휩쓸며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뜨렸다. 수십만 백성이 괴질의 정체가 뭔지도 알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이 역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오히려 민중의 마음을 얻어 교세를 확장한 것이 바로 동학이었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1827~1898)은 괴질의 유행 경로를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했다. “침을 아무 데나 뱉지 말며, 코를 멀리 풀지 말라. 코나 침이 땅에 떨어졌거든 닦아 없애라. 먹던 밥을 새 밥에 섞지 말고 먹던 국을 새 국에 섞지 말라. (…) 이리하면 연달아 감염되지 않을 것이다.” 해월의 위생학적 통찰은 동학교도들을 콜레라로부터 지켜주었고, 동학에 들어가면 괴질에 당하지 않는다는 말이 퍼져 나갔다.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한 동학은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는 평등 세상을 선포하고 동학농민혁명으로 나아갔다.

해월이 활동하던 시기에 계룡산 동학사에는 경허(1849~1912)라는 걸출한 승려가 나타나 이름을 떨쳤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출가한 경허는 일찍 경전에 달통해 동학사 강백이 됐다. 수많은 승려와 신도가 경허의 <금강경> 강론을 들으려 몰려들었다. 서른한살 때 경허는 처음으로 절간을 나와 속세의 땅을 밟았다. 천안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쳤다. 경허는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집마다 문을 두드렸으나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겨우 문을 열어주는 집이 있었는데, 노인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이 동네 전체가 호열자 귀신에 씌어 집집이 시체요. 빨리 도망가시오.” 도를 닦아 생사를 초탈했다고 자부하던 젊은 승려는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자 혼비백산해 줄행랑을 쳤다. 경허는 이 참담한 체험을 통해 진정한 구도자로 거듭났다. 훗날 큰 깨달음을 얻은 경허는 나병에 걸려 손과 발이 뭉개지고 코가 문드러진 여인을 제 방에 들여 전심으로 돌보는 무애의 자비행을 실천했다.(도올 김용옥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해월은 선각자의 통찰력으로 조선 민중을 지켰고, 역병을 통해 대각에 이른 경허는 조선 불교를 새로 일으켜 세웠다. 전염병의 집단 숙주가 된 오늘의 한국 종교와 종교인들이 귀감으로 삼을 만한 삶이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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