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용 ㅣ 전국2팀 기자(환경 담당)
코로나19 외에 다른 얘기는 엄두도 못 내겠다. 전세계가 말 그대로 전쟁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2차 대전 이래 최대 위기”(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나는 전시 대통령”(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각국의 지도자들이 이번 사태를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집에 갇힌 가족을 보며
세상의 종말을 떠올린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기후위기와 닿아 있다. 인류가 야생동물의 서식 영역을 침범하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아왔다. 지구 기후변화가 초래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 묻혀 있던 고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깨어난다. 이 때문에 사태의 근본적인 처방은 기후위기 대응이어야 한다.
유력한 기후위기 대응책으로는 ‘그린 뉴딜’이 꼽힌다. 이는 태양과 바람의 에너지를 쓰는 녹색산업으로 산업구조를 다시 짜는 정책 패키지다. 에너지 효율을 늘리고 건축물과 교통 기반시설을 ‘녹색화’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오도 가도 못하는 ‘좌초산업’인 화석연료산업 종사자들의 실직을 막고, 심화된 불평등도 해결할 수 있다. 유럽 기후운동가들이 2007년쯤 기획해 지난해 미국과 유럽에서 집중 조명됐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 과정의 주요 의제이기도 하다.
반면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적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정의당, 녹색당 정도가 진지할 뿐이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한가하고 안일하며 모호한 내용”(기후위기비상행동 논평)의 공약을 내놨고,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관심조차 없다. 보다 못한 ‘청소년기후행동’이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기후위기 문제가 심각한데도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받았다는 이유에서다.
청소년들의 기후소송을 보도한 기사엔 어처구니없게도 “온난화가 인간 때문이냐”, “온난화가 되면 겨울철 동사자 수도 주는 것 아니냐”는 댓글이 달렸다. “온실가스와 도시가스의 차이부터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환경운동가의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다. 이런 ‘댓글러’들은 기후 문제가 예민한 사람들의 과한 걱정이라고 보는 모양이지만, 대단한 착각이다. 그런 이들이 선호하는 ‘경제 발전’의 측면에서도 시급하다. <노동의 종말>을 쓴 미국의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최근 펴낸 책 <글로벌 그린 뉴딜>에서 “2028년경 화석연료 문명이 붕괴한다”고 썼다. 겨우 8년밖에 남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이미 태양과 바람을 이용한 발전 비용은 석탄보다 싸고, 석유나 천연가스와 비슷하다. 앞으로 수년 안에 태양과 바람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한계비용은 ‘0’에 가까워진다. 석탄과 석유로 만든 전기가 원료 자체가 무한한 태양과 바람으로 만든 전기와 경쟁이 되겠는가.
상황이 이렇지만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7.6%(2017년)에 불과한 한국은 여전히 석탄발전소 7개를 새로 짓고 있다. 정부의 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보면, 2040년에야 이 비율이 30~35%로 늘어난다. 석탄발전 비중은 10년 뒤에도 36.1%에 이를 예정이다. 반면 영국은 2014년 기준 전체 발전량의 30%였던 석탄발전을 지난해 5.4%로 줄였다. 독일은 2000년 6.6%였던 재생에너지 비율을 지금의 52%로 획기적으로 늘렸다. 독일엔 이미 원자력, 석탄보다 태양과 바람으로 만든 전기가 더 많다. 최근엔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문제가 됐다. 풍력발전소의 전기를 정부가 사들이는데, 너무 많은 전기가 생산된 탓이다. 우리로선 상상도 힘들다.
올해는 지구 온난화에 대응할 마지막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말까지 각국 지도자가 지구 온난화를 막을 유효한 조처에 합의해야 전세계 기상과학자들이 제시한 시한인 향후 10년 안에 온실가스 배출 감소가 이뤄질 수 있다. 고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에, 서둘러 막아야 한다. 이런 전쟁 같은 상황을 앞으로도 계속 감당할 순 없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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