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민호 ㅣ <옥천신문> 제작실장
주민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기관은 무얼까? 읍면사무소도 아니다. 학교도 아니고, 경찰서도, 복지관도, 농협도 아니다. 바로 보건진료소다. 옥천군 읍면사무소는 9개이고, 초등학교도 분교까지 합쳐 14개뿐이지만, 보건진료소는 16개다. 10여년 사이 5개의 보건진료소가 폐지되지 않았더라면 21개였다. 보건진료소 정책은 어쩌면 퇴행을 거듭했다. 보건진료원들은 당시 진료소 옆 사택에 거주하도록 의무화되었지만, 이 정책이 2008년께 풀리고, 2012년에 별정직이 일반직으로 전환되면서 주민들과 조금씩 멀어져 갔다.
이전 보건진료소는 그야말로 주민들 건강 사랑방이었다. 농촌에는 관절, 혈압, 당뇨를 앓는 고령의 환자들이 많아서 보건진료소는 문턱이 닳도록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이전 보건진료소가 특이했던 점은 주민 중에서 선출된 보건진료소운영협의회장이 진료소 전체 운영을 맡았다는 것이다. 살림살이를 총괄하고 운영협의회장의 결재를 득해야 약품을 구입하고 여러 프로그램을 같이 기획할 수 있었다. 공공의료에 주민이 주인으로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전문성은 물론 간호사인 보건진료소장에게 있었겠지만, 지역사회 여론을 모아내는 역할, 보건진료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들을 취합하는 구실을 바로 보건진료소운영협의회장이 했던 것이다. 이 체제가 일하는 사람들 처지에서는 걸리적거릴 수도 있다. ‘엘리티즘’은 이런 데서 곧잘 발현된다. 엘리티즘의 무책임, 무능함은 바로 옆 보건지소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대부분 젊은 의사들이 병역의무를 대체하러 오는 보건지소장은 정말 거쳐 가는 자리다. 2년 동안 성심껏 일하는 의사들도 있지만, 지소장의 자질에 따라 보건지소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주민들의 통제를 받지 않으니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다. 보건소장의 영도 잘 서지 않는 어정쩡한 무중력 지대에 지소가 존재하니 주민들은 지소를 이용하지 않고 읍내 병원으로 나온다. 만일 예전 보건진료소처럼 지소운영협의회장에게 권한을 주고 운영을 한다면 주민 눈치를 보고 이야기를 듣느라 운영체계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바뀐 시계는 되돌아갈 리가 없다. 역시 ‘효율성’이 전가의 보도였다. 옥천군은 2008년 안내면 용촌보건진료소와 청성면 합금보건진료소를 폐지한 데 이어 지역 거주 제한을 풀었다. 그전부터 진료소장 대부분은 읍내나 대전에서 출퇴근했지만, 그 제한도 풀리면서 지역에 거주하는 진료소장은 아예 없다. 2012년께 별정직에서 일반직으로 바뀌면서 2~3년마다 인사이동이 나기 시작했고, 보건진료직은 이제 승진의 물꼬도 트이며 진료소가 아닌 다른 보건행정직도 맡을 수 있게 되었지만, 주민들 품에서는 그만큼 멀어져 갔다. 보건진료소 하나가 폐지될 때마다 주민들은 몸살을 앓았다. 투쟁하고 시위를 했으며 지키려고 애썼다. 가장 중요한 생명권과 건강권을 지키는 주요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민이 통제하고 운영하는 민주적인 조직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후 2013년 옥천읍 옥각보건진료소가 폐지됐고, 2014년에는 이원면 현리보건진료소가 폐쇄되었다.
ᅠ왜 이렇게 주민들이 보건진료소 통폐합에 앞서서 반대하고 투쟁하였을까? 정말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예전 보건진료소야말로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돌봄)의 본령이었다. 집집마다 방문보건업무를 수행하며 집안 사정까지 훤히 꿰어 정말 임의로운 소통이 되었다. 그 집 밥숟가락이 몇 개였는지 다 알았다. 보건업무뿐만 아니라 부족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채워주는 티 나지 않는 복지활동도 벌였다. 진료소에선 약 처방뿐만 아니라 운동교실, 건강교실도 열리면서 주민들로선 그나마 근접 거리에서 자신의 몸을 생각해주는 주치의 하나 얻는 것 그 이상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거점 공공의료가 강조되는 이 시점에서 새로운 방안과 대책을 굳이 찾을 필요 없다. 이전 보건진료소 시스템에 대한 평가와 토론이 활발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학계든 언론에서든 간에 ‘지역’, ‘농촌’, ‘농업’ 자가 들어가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받아 관련 논문도 기사도 찾을 길이 없다. 당시 보건진료소 폐쇄 논란은 옥천 지역에서 가장 ‘핫’하고 큰 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