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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청년 통계에 청년의 목소리를 / 김선기

등록 2020-04-29 18:11수정 2020-04-30 02:07

김선기 ㅣ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청년의 삶을 잘 보여주는 통계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청년활동가들이나 청년정책 담당 공무원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다. 그러나 청년을 조사 대상으로 삼는 통계는 이미 무수히 많다. 청년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설문조사 표본에 청년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청년정책이 확산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지자체별로 청년에 대한 기초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수많은 통계를 두고도 쓸모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이로 인해 재차 더 종합적인 대규모 설문조사를 추진하는 쳇바퀴 상황이다.

더 많은 예산을 들여 다시 통계를 만들면 이 교착 상태를 극복할 수 있을까? 아니라 생각한다. 수요자가 원하는 ‘통계’와 공급자가 생각하는 ‘통계’가 괴리된 데 문제의 근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실천가들은 청년을 직접 조사하여 나온 통계 수치가 직관보다는 청년 문제의 현실을 더 과학적으로 보여주며, 나아가 그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조사업체에는 이러한 기대가 너무 무리한 요구 혹은 사회조사의 의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소리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청년에 대한 통계를 생산하는 주체들은 많은 경우 그러한 활용은 이후 다른 연구자나 공무원, 정책 전문가 등에게 맡겨야 할 작업이며, 통계 생산의 의의는 기초 자료의 축적이라고만 보는 듯하다.

특히 구체적 곤란 혹은 정책 욕구를 지닌 청년층 내의 소집단을 발견해내는 일은 실천가들에게 중요한데, 이 작업을 대부분의 사회조사에서는 진행하지 않는다. 청년층 내부의 이질성을 보여주는 자료임을 스스로 강조하지만 대체로 관례적인 분류 범주에 의지하여, 여전히 너무 큰 뭉텅이만을 보여준다. 20~30대를 5살 단위로 끊고, 성별을 구분하는 정도가 전부다. 학력, 소득 수준, 직업군, 주거 형태, 부모와의 관계 등 계급 분석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변인들이 수집되기는 하지만, 통계조사 보고서에서 좀처럼 중심적인 차이의 요인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이러한 관행의 가장 큰 문제는 구체적인 청년 문제를 다층의 권력 작용과 연관해 세밀히 보여주지는 못하면서, 20대와 30대 중, 청년 남성과 청년 여성 중, 고졸과 대졸 중 누가 더 어렵냐를 따지는 공허한 논쟁만을 남긴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합의된 기준만으로 청년의 하위 범주를 설정할 때, 비혼, 장애, 성소수자, 프리랜서, 활동가, 비진학청년과 같은 범주어를 동원해야 설명할 수 있는 문제는 청년의 ‘기초실태’에서 탈락하게 된다.

조사 대상이기도 한 청년 당사자의 욕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최소한이라도 통계의 생산이 변화했으면 한다. 조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수치화된 관리 대상이 될 위험과 결부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변화를 요구할 근거 자료를 요청하며 기꺼이 대상이 되는 청년들의 절실함을 단순히 비전문가의 시선이라고만 취급하지 않아야 한다. 문항별로 수치들만 한장 가득 적혀 있는 통계표와 건조한 기술이 전부인, 두꺼운 자료집을 보면서 이해당사자는 당장의 효용을 느끼기 어렵다. 인과적 설명을 해내지는 못하겠지만, 조사 결과 나온 수치들의 의미를 꿰어내는 다양한 가설을 제기하는 정도는 해볼 수 있는 일 아닐까. 해석 덧붙이기를 통해 통계치의 잘못된 해석과 오용을 방지할 수 있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청년 당사자-활동가들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을 통계의 생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하나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천가들이 활용하기 용이한 방식으로 조사 및 분석 항목을 설정한다면 좀 더 쓸모 있게 느껴지는 결과물이 산출될지도 모른다. 청년을 주요한 연구 분야로 삼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각자의 연구 문제에 관련된 문항을 사회조사에 반영할 수 있는 길을 조사용역을 발주하는 지자체나 연구기관 등이 적극적으로 여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들은 각자의 연구물을 빠르게 작성하여 청년 문제에 대한 심화된 담론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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