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 ㅣ 제주 출판사 ‘켈파트프레스’ 대표·미술평론가
금강산과 비무장지대(DMZ)라니. 스스로 타이핑을 하면서도 어색하다. 1980년대 초에 제주에서 태어난 내게 북한과의 접점이라곤 없다. 월북한 먼 친척도, 월남한 증조할머니도 없다. 제주엔 변변한 냉면집조차 없었으니, 북한이란 티브이 뉴스에 존재하는 세상에 불과했다. 미술사 공부를 할 적에 월북 화가들의 이야기에 약간의 호기심을 가졌다가도 이내 흥미를 잃었다. 솔직히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궁금한 유럽과 미국의 화가들이 더 많기도 했거니와 대한민국의 역동적인 미술계 흐름을 좇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여겼다.
금강산과 비무장지대를 만난 건 급작스러웠다. 강요배라는 거장의 개인전을 제주의 국제평화센터라는 기관에서 준비해야 하는데, 외부 기획자로 손을 보태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획, 일정, 예산이 이미 짜여 있었고, 나는 도록 제작과 운송, 설치 등 운영 전반을 맡은 오퍼레이터였다. 전시는 캔버스 작품 2점과 현장스케치 작품 54점으로 구성되는데, 작품들은 모두 북한, 구체적으로 금강산과 비무장지대를 다룬다.
1998년 11월18일, 분단 반세기 만에 남한에서 북한으로 관광을 가는 금강호가 출발했다. 금강산 투어 목적을 가진 배의 출항이었다. 18일의 첫 출항 이후 한국의 많은 화가들이 이 명산으로 스케치 여행을 떠났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를 열었다. 그중에서도 강요배의 금강산 스케치를 바탕으로 한 1999년 학고재 갤러리에서의 전시는 가장 처음으로 기록된다. 이후로 10년간 이어진 금강산관광은 2008년 일어난 사고로 여행이 중지된 이래 지금껏 재개되지 못했다. 아마 금강산과 나의 접점이 더욱 없어진 이유이기도 할 터이다. 한국에선 지속적으로 금강산관광을 재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강요배의 첫 전시 20년 만인 2019년 말엔 다시 금강산을 개방하길 요구하며 기자회견 및 결의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북한이 금강산에 있는 남쪽 시설을 철거하겠다면서도 “남녘 동포들이 오겠다면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라고 말한 부분에 주목한 움직임이다. 어쩌면 금강산 여행이 다시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금강호가 출항하기도 전에 강요배 화백이 스케치 여행을 가서 그린 드로잉들과 2000년에 휴전선 답사대가 다녀온 비무장지대의 스케치들, 그리고 2007년에 다시 금강산을 찾아 그린 스케치들이 이번 전시의 주를 이룬다. 대형 캔버스에 아크릴화로 재제작한 <중향성>과 <구룡폭3> 같은 신작도 포함한다. 2019년 화백은 금강산을 찾은 기억을 되새김하며 <구룡폭3>과 <중향성> 캔버스 작업을 새로 한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신작으로, 화업 20년을 이어오며 무르익은 화가의 필력을 전작과 비교해볼 수 있다. 분명 풍경에 대한 기억은 더 흐려졌을 텐데, 화폭 속 화면은 더욱 생생해진 아이러니가 전시의 방점을 찍어준다.
캔버스에 아크릴화로 제작된 <구룡폭3> 외에 1998년 그린 <구룡폭 1, 2> 드로잉도 볼 수 있다. 1998년도에 그린 <구룡폭> 캔버스 작업 대신, 원본 드로잉의 영감을 이어서 20년 뒤에 다시 그린 <구룡폭3>을 나란히 두고 볼 수 있다. 구룡폭은 높이가 최고 50m로 금강산에 있는 폭포 가운데 가장 크다. 폭포의 웅장하고 굳센 기운이 현장스케치에도, 작품에도 잘 묘사돼 있다. 직각으로 꺾인 암벽을 타고 낙하하는 폭포는 구룡연으로 빨려들 듯 떨어진다. 이 장면은 <겸재정선화첩>에 실린 21점의 작품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구룡폭도>에 묘사돼 있기도 하다. 강요배의 신작 아크릴화는 겸재의 <구룡폭도>와 구도가 비슷해 함께 두고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국제평화센터는 2005년 정부에서 제주특별자치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하고 평화에 대한 홍보나 전시교육을 위해 만든 시설이다. 제주에서 4·3항쟁을 주목하고 민중미술을 이끌었던 강요배 화백의 기획 초대전을 금강산과 비무장지대를 주제로 제주국제평화센터에서 열게 된 맥락은 자연스럽다. 무더위가 예상되는 6월의 시작부터 8월 말까지 대한민국 남쪽 제주에서 금강산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시원한 전시장에서 더 시원한 산과 폭포의 풍경들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