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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역에서] 조광호와 이달곤, 자치와 행정의 차이 / 황민호

등록 2020-05-18 18:44수정 2020-05-19 02:40

황민호 ㅣ <옥천신문> 제작실장

이번 총선에 눈여겨본 지역이 있다. 경남 진해 선거구였다. 정의당의 조광호 후보와 미래통합당의 이달곤 후보. 둘은 상징적인 인물이다.

자치구역을 지키려던 자와 행정구역을 통합하려던 자. 더 가치를 담아 이야기하자면 진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려던 자치 운동가와 지도에 금 그으면서 제멋대로 행정구역을 통합하려던 당시 행안부 장관.

결국엔 마산 창원 진해는 통합되어 창원시로 되었고, ‘진해’라는 이름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질 것이다.

주민들이 뽑았던 시장은, 이제 통합창원시장이 임명하는 구청장이 되었다.

10여년 전 당시 나는 <옥천신문> 기자로 행정구역 개편에 따른 문제점을 기획기사로 취재하고 있었고 시민단체 ‘희망진해사람들’ 대표를 맡았던 조광호씨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는 행정구역 통합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인상적인 말이 있었다.

“민원이 생기면 진해시장실에 가서 시위라도 했는데 통합하면 창원까지 가야 한다. 통합창원시장이 과연 변방이 되어버린 인구도 얼마 안 되는 진해 사람 말을 들어주겠는가.” 조광호 후보는 안타깝게 사퇴를 했다. 어떻게든 이달곤 후보가 되는 건 막아보려고 그런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여러모로 아쉬웠다.

기본적으로 도시는 커지려는 속성이 있다. 자본과 권력의 욕망이 응축되어 있는 결집체이다.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자꾸만 확장하려는 관성이 작동한다. 시는 인근 약소한 시군을 통합하여 통합시를 넘어 광역시를 꿈꾼다.

그래서 거추장스러운 농촌 지자체와 고만고만한 중소도시의 연합인 ‘도’를 벗어나 홀로 우뚝 서려고 한다. 있는 자들의 땅값과 도시 편의성이 증대되면서 그 공간에 사는 입김 세고 힘센 자들의 공모가 시작되면 이미 게임은 끝난 거다.

인구를 자꾸 불리고 땅덩이를 넓히며 ‘우리도 광역시로’ 구호를 내걸면 이 땅에 하나둘 괴물 도시가 탄생하는 셈이다. 면민 읍민은 가당찮고 군민보다 시민이 되고 싶어 하고 광역시민보다 특별시민이 되고 싶어 한다. 지금 현실의 세계는 힘 있고 돈 있고 배운 사람들의 욕망이 현현하게 살아 있는 그 모습 그대로다.

진해뿐만 아니라 제주의 서귀포시, 남제주군, 북제주군, 충북 청원군도 행정의 효율이라는 미명 아래 구역을 통합해 자치를 망가트렸다. 제주의 난센스는 특별자치를 이야기하면서 4개의 기초지자체를 다 무너뜨렸다는 데 있다.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도시는 한없이 욕망한다. 욕망하는 것이 어디 도시뿐이랴. 농촌도 욕망한다. 잘되는 도시에 ‘꼽사리’로 끼어 어떻게든 곁방살이를 할 수 있을까 눈 맞춤을 한다. 강화군이 그렇게 인천광역시로 스며들었다.

당시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간 강화군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세금만 올라갔고 달라진 건 없다’고 했다. 광역시에 속하고 나서 농업정책과 예산, 도시계획을 스스로 할 수 없게 되었다. 경기도는 도농복합행정이고 인천시는 도시행정이다 보니 농업, 농촌이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이 때문에 강화군 주민들은 경기도 환원 운동을 했었다. 이런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전 인근의 옥천군과 금산군은 몇해 전까지만 해도 군수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나온 단골 메뉴가 대전과의 통합이었다. 요즘 옥천은 대전 광역전철 연결이 큰 이슈다. 연결이 되면 10분 남짓 만에 갈 수 있는 편의성 때문에 많은 주민들이 연결을 희망하기도 한다. 이런 희망은 기실 욕망에 기인한다. 광역시민이 되고 싶다는 욕망, 도시의 편의성을 가깝게 누리고 싶다는 열망은 농업, 농촌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발전’과 ‘개발’, ‘성장’이라는 근대화의 가치들이 체화되어 한 세기를 흘러온 마당에 이런 욕망 말고 다른 방향과 가치를 찾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될는지도 모른다.

해외를 이웃 동네 마실 가듯 하는 이 시대에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사유와 성찰이 부디 지근거리의 삶에 대한 다양한 상상이었으면 한다. 내가 사는 농촌을 배반하지 않고 부정하지 않는 삶에 대해 꿈꿔본다. 광역시를 없애고 다시 도 아래 수평적으로 고만고만한 도시로 연결되었으면 한다. 통합하여 커지는 것보다 분화하여 작고 다양해지길 희망한다. 자치시였던 진해시와 서귀포시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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