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그 책을 뚜렷이 기억한다. 1989~91년에 나온 <국가보안법연구> 세권짜리의 세트였다. 내가 이 책을 27년 전인 학창 시절에 손에 쥔 것은 범상치 않은 인연이었다. 배가 고팠던 시절이라 가이드 알바를 자주 뛰곤 했는데, 어느 날은 운 좋게도 그 당시에 ‘개혁적인 법학자’로 유명했던 안경환 서울대 교수를 내 고향에서 가이드하게 됐다. 그는 나에게 그때 국가보안법 폐지의 필요성을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나중에 한국에 가게 되면 국가보안법에 대해 보다 자세히 공부해보라며 이 두꺼운 책을 건네주었다. 그 책을 지은 박원순이라는 사람은 전도가 유망한 인권 변호사라고 귀띔해 주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그 선물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그 책을 읽어가면서 한국에서 나온 그 어느 교과서에도 실려 있지 않은 대한민국의 이면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책에서 알게 된 국가보안법의 피해는 각양각색이었다. 당대로서도 ‘상식’의 선을 넘는 기소나 판결이 대부분이었다. 평화통일을 선구적으로 거론한 조봉암은 (조작된) 간첩죄와 함께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됐다. 조봉암이 잡혀갔던 1958년에, 함석헌은 <사상계>에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을 게재해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갔다. <사상계>의 발행인이었던 장준하도 연행되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의 피해자 중에서는 유명인보다 이름 없는 민초들이 훨씬 더 많았다. ‘막걸리 보안법’이라는 말을 기억하는가? 술김에 “김일성은 북괴지만, 박정희보다 인물이 낫다”는 식의 말을 내뱉었다간 감옥을 갈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박원순이 그 책에서 소개한 한 사례를 다시 보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면전에서 철거반원을 향해 ‘김일성보다 더한 놈들’ 운운한 것은 북괴의 학정을 겪지 못한 자들에 대하여 북괴에서는 대한민국보다 나은 행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게 될 것이고 그곳에 가서 살아보겠다는 의사도 내포된 것이라 할 것이어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에 해당된다.”(대법원 1970년 8월31일 선고·70도1486 판결 사건의 검사 상고이유서)
집을 빼앗긴 철거민이 철거반원을 향해 ‘김일성보다 더한 놈’이라고 외쳤다가 영어의 몸이 됐다. 박원순의 책은 유명인부터 영세한 철거민들까지 한국인들이
국가보안법의 공포 아래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나에게 일깨워 주었다. 그 책이 아니었다면 나의 한국 현대사 공부는 ‘반쪽짜리 공부’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27년이나 지나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조봉암·함석헌·장준하 등 과거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은 지금은 현대사의 영웅들로 손꼽힌다. 안경환 교수는 2006~09년에 국가인권위 위원장을 지냈으며, 박원순은 이제는 국가보안법 연구보다는 2011년 이후 서울시장을 역임해온 것으로 더 유명하다. 이외에도 수많은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와 비판자들은 그사이 김대중처럼 대통령이 되거나, 장관이나 국회의원·자치단체장 등 요직을 지냈다. 그런데 유일하게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국가보안법의 존재 그 자체다. 1950년대에 함석헌이나 장준하를 감옥에 보낸 법, 1970~80년대에 ‘막걸리 보안법’의 덫에 걸린 수많은 시민들을 고문실로 보낸 법은 지금도 존재한다. 민주화의 모범 사례로 늘 거론되는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며칠 전에 대법원 제2부는 옛 통합진보당 행사에서 ‘혁명동지가’를 불렀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된 과거 당원들 3명에 대하여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의 반국가단체 등 활동 찬양·동조로 유죄판결을 확정했다.(대법원 2020도2596 판결) 이 판결로 피고인 중 한명인 경기 파주시의회 민중당 소속 3선 안소희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기도 했다. 나는 이 판결에 대한 뉴스 기사를 처음 읽었을 때 아예 내 눈을 의심했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막걸리 보안법’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져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민중가요를 불렀다고 해서 유죄판결을 받는 것은, 술김에 ‘김일성이 멋지더라’라고 하거나, 홧김에 ‘김일성보다 더한 놈’이라고 해서 죄인이 됐던 시절의 일과 뭐가 그리 다를까? 참고로, ‘혁명동지가’는 “동만주를 내달리며 시린 장벽을 넘어”로 시작되지만 김일성의 이름 석자가 직접 거론되지도 않는다. 김일성 부대를 특정한다기보다는, 만주에서 전개된 무장독립투쟁을 낭만적으로 형상화한 민중가요일 뿐이다. 이 가요를 불렀다고 해서 ‘범죄자’가 되는 것은, 김일성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려’ 수인이 됐던 1970~80년대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사법 정의의 왜곡이 아닌가?
대한민국의 ‘최우방’인 미국의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의 논리상 ‘반국가 단체의 괴수’로 간주돼야 할 김정은 위원장을 “좋은 친구”라고 공개적으로 부르고, 한국 대통령이 바로 그 ‘반국가 단체의 괴수’와 함께 백두산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는 시대다. 이 시대에 “동만주를 내달리며 시린 장벽을 넘어”를 불렀다고 해서 유죄판결을 내리는 사법부의 저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1970~80년대와 마찬가지로, ‘북한’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철거반원에게 홧김에 ‘김일성보다 더한 놈’이라고 외친 체제의 피해자가 ‘친북파’가 아님은, 경찰도 법원도 당연히 알았다. 보안법은, 체제의 피해자가 반발에 나서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공포의 도구에 불과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원칙상 약자, 피해자가 반발할 자유가 있어야 하지만, 극단적 착취를 기반으로 했던 체제는 그런 반발을 용인할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무소불위의 보안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오늘날은 어떤가? 이번에 불순한(?) 가요 제창으로 ‘죄인’이 된 정치인, 활동가들은 민중당 소속이다. 민중당은 조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좌파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정당이다. 민족주의 정서야 당국자들도 필요할 때에 종종 이용하지만, 민중당의 좌파적 성격이야말로 그들의 눈엔 가시다. 결국 이번과 같은 유죄판결은, 보안법을 무기 삼아 좌파의 ‘기를 죽이려는’, 사법의 가면을 쓴 정치탄압으로 봐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민선 시의회 의원이 ‘노래를 잘못 불러’ 의원직을 잃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파괴이기도 하다. 시의원은, 법원이 아닌 시민들이 뽑는 것 아닌가?
박원순은 서울시장이 됐어도, 그의 옛 책에 나오는 ‘막걸리 보안법’보다 더한 광경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약자를 억눌러 그 반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이용되어온 악법은, 도대체 언제까지 한국 사회의 목을 조르고 있을까?
박노자 ㅣ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