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ㅣ 법조팀장
2000년대 중반 서울고법 법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불구속 피고인이 최종 형량을 선고받으러 피고인석에 섰다. 그런데 판결문을 읽으려던 부장판사가 갑자기 화를 냈다. “법정에 나오면서 복장이 그게 뭐냐”고 했다. 내가 잘못 봤나 싶어 다시 그 피고인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는 바지 색깔과 다른 재킷을 걸쳤고 셔츠가 아닌 맨투맨 라운드 티를 받쳐 입고 있었다. 슈트는 물론 넥타이도 매지 않은 피고인의 복장에 부장판사는 심기가 무척 불편했던 것이다.
공소사실이 복잡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재판은 오후가 되면 나른한 풍경이 자주 연출됐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증인신문에 배석판사는 졸음을 이기지 못했다. 3명의 합의부 판사 중 주심이 아닌 배석판사의 집중력은 식곤증에 무기력해지기 일쑤였다. 직업 정신에 투철하지 못한 행태라고 지적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내 또래 배석판사의 ‘법정 수면’엔 동병상련을 느꼈다. 기자인 나도 그랬으니까.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호통치고 가수면 상태의 판사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던 건 재판이 모두 공개돼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강조되기 시작했던 ‘공판중심주의’도 ‘영감님의 권위’ 정도로 양해되던 판사의 고압적인 재판 방식을 성찰하게 했다. 재판 모니터링부터 법정 언행 컨설팅까지, ‘군림하지 않는 재판’을 위한 법원의 노력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거치면서 재판의 중요성과 주목도는 더욱 커졌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범죄자로 낙인찍지 말고 공개재판을 통해 죄가 되는지를 따져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검찰과 변호인의 공방은 치열하게, 국민의 판단은 차분하게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 재판은 되도록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조국 사건 첫 재판은 34석 규모의 소법정에서 진행됐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식 좌석을 배정하다 보니 방청 가능 인원은 좌석 수의 절반으로 줄었고, 일반 방청석은 선착순으로 8자리만 가능했으며, 재판 상황을 상세히 보도해야 하는 기자들에겐 7자리가 배정됐다. 노트북으로 검사와 변호인, 재판장과 피고인의 말을 받아칠 수 있는 자리는 단 3자리뿐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추첨을 통해 행운을 얻은 7개 언론사만 조국 재판 상황을 직접 챙길 수 있었다. 참여 언론사가 쳐준 녹취록을 공유받았던 언론은 재판 당사자들의 말이 어떻게 부딪치고 불꽃을 튀겼는지 법정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 시각 150석 규모(75명 방청 가능)의 대법정은 텅 비어 있었다.
길원옥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낸 손해배상 소송 취재에도 기자들은 애를 먹고 있다. “특정 국가의 법적 책임을 다른 나라 법원의 판결로 강제할 수 없다”는 국가면제이론을 둘러싼 법률적 쟁점이 존재하고, 일본 정부에 책임 인정을 촉구하는 피해자들의 마지막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재판이다. 그러나 지난 20일 4차 변론 때까지 기자들은 재판 상황을 수첩에 손으로 적어야 했다. 재판장이 노트북 사용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례적인 상황을 전해 들은 한 판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요즘 기자들, 노트북 못 써도 핸드폰으로 다 받아치지 않아요?” 취재 중인 기자는 이렇게 답했다. “휴대전화로 기록하는 것도 불허했으니 문제죠.”
대법원은 최근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공개변론을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서울고법은 거리두기 탓에 법정에 들어오지 못하는 취재진이 없도록 옆 법정에서 재판 실황을 볼 수 있게 하는 ‘중계 법정’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법원의 이런 전향적인 노력도 여전히 군림하는 듯한 몇몇 ‘옛날식 재판’ 앞에서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이제는 “법원의 시간이 왔다”고 하는데 법정의 문이 더 활짝 열리길, 판사의 ‘자비’에 기대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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