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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중 신냉전에 끼인 한국, ‘줄타기’ 넘어 게임에 참여하자

등록 2020-05-29 20:05수정 2020-05-30 02:30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지난 28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올해 처음으로 국방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외교전략조정 통합분과회의를 열어 미-중 갈등에 따른 우리 정부의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외교부 제공
지난 28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올해 처음으로 국방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외교전략조정 통합분과회의를 열어 미-중 갈등에 따른 우리 정부의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외교부 제공

“세계 통상의 틀이 바뀌었다. 과거의 통상정책과 전략이 원교근공(遠交近攻)이었다면 이제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2017년 8월 김현종 당시 신임 통상교섭본부장이 취임 일성으로 던진 말이다. 뜻풀이를 따로 하지 않았지만, “협상 상대방을 예측 불가능하게 하는 통상전략가가 돼야 한다”는 말을 보탰다. 미국·중국의 변방에 자리잡은 한국은 먼 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가까운 나라들은 공격하는 ‘원교근공’이 통상의 기본 축이었다. 거대 세계시장은 미국·유럽에 있고, 일본·중국·대만은 이 시장 영토를 두고 다투는 공격해야 할 경쟁국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적 부상 이후 판도가 뒤집어졌다. 지금 미국은 통상‘정책’으로, 중국은 통상‘협력’으로 접근하고 있다. ‘동쪽에서 소리 지르고 서쪽을 친다’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이 묘책은 ‘수출 한국’을 둘러싼 통상질서가 복잡한 혼돈에 들어섰음을 극적으로 말해준다.

요즘 미국과 중국 사이에 경제·외교 ‘신냉전’이 연일 격화하면서 둘 사이에 ‘끼인’ 한국의 숙명적 처지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5세대(5G) 이동통신망 반화웨이 전선과 ‘경제번영네트워크’(EPN) 동맹 구축 등 글로벌 분업체제에서 중국을 배제·고립시키려는 미국의 ‘반중국 경제블록’ 동참 압박은 우리 정부·기업에 이미 들이닥쳐 와 있다. 28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주재한 외교전략조정회의에 청와대, 국무조정실, 기획재정·산업통상자원·통일·국방·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정보원이 총출동했다. 바야흐로 정치·외교·경제가 한데 뒤엉키며 요동치고 있는 당면 국제정세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한국은 이른바 ‘소규모 수출 의존 개방경제’다. 각국의 정치·경제 지형 변동에 즉각 휘둘릴 수밖에 없다. 어느 전직 차관(경제부처)은 “우리처럼 제조업에서 거의 모든 산업·업종을 주력 생산·수출제품으로 거느린 채 경제를 도모하고 영위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드물다”고 말했다. 품목별 경기 변동뿐 아니라 기술·세계화·통상정책제도까지 모든 세계 경제 요인의 영향을 받는 한복판에 놓여 있어, 국내 모든 산업이 그 영향에 휘청거리거나 혹은 도약하게 되는 산업경제 구조다. 그 결과, 미국·중국과의 통상협상에서 어떤 업종을 상대방에 양보하고 대신에 다른 업종에서 뭔가를 얻어내야 하는 전략적 선택 상황에 빠져들면 산업계 내부에 소요와 갈등이 빚어지는 일이 되풀이됐다. 미-중 신냉전 파도에 꼬여든 우리의 또 다른 난감한 지점이다.

전지구적으로 생산·교역·교환거래 활동이 코로나 이전에 견줘 90% 수준으로 쇠퇴하는 이른바 ‘90% 축소재생산 경제’(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뉴노멀로 자리잡을 거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경제적 평화는 역동적으로 번영할 때뿐이다. ‘90% 경제’가 제약 조건으로 등장하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트럼프 이후에도 미국인들이 광범위하게 지지하는 슬로건이 될 것이고, ‘중국몽’(中國夢) 또한 14억 인구의 위대한 꿈으로 시진핑 이후에도 여전히 내걸릴 것이다. 신냉전은 “설사 세상이 엉망이 되더라도 나는 돈 한푼 잃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트럼프의 노회하고 변덕스러운 성정 탓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지휘자 시진핑의 패권적 야망 때문만도 아니다. 이 비협조적 게임은 몇번으로 정해진 유한 전략게임이 아닐 것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수년, 수십년 동안 반복되고 지속될 불화이기에 한쪽의 ‘굴복’을 섣불리 점치는 건 오판이 될 공산이 크다.

철저하게 힘의 위계질서가 작동하는 무역통상질서에서 우리는 강대국 틈에서 일그러진 역사를 통과해왔다. 수출로 먹고살아 ‘자유무역 수혜국’이라는 인식도 퍼져 있어 씁쓸하지만, 여전히 무역 대국들의 눈치도 봐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이쪽저쪽에 얻어맞게 될까 봐 양쪽 심기와 노여움을 살피는 ‘딜레마 속 줄타기’를 넘어, 우리도 게임에 참여하는 한 선수임에 틀림없다. 상호 간 이익균형 도달 게임은 아니지만, 미국·중국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제3국들까지 여러 상대 선수의 행동을 보면서 각자 자신의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게임이다.

“바다에서, 나의 무의 위치는 적의 위치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 내가 함대를 포구에 정박시키고 있을 때도, 적의 함대가 이동하면 잠든 나의 함대는 저절로 이동한 셈이었다.”(김훈, <칼의 노래>) 한국만 ‘나’가 아닐 것이다. 미국·중국도 ‘나’가 될 수 있다. “우리와 유사한 국가들과 ‘중견국 공조’를 주도하겠다”(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는 흥미로운 주창도 나온다. 기술적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표방하면서 계속 동요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배포를 더 키워야 한다. 반도체·스마트폰을 위시해 세계시장이 오히려 한국 경제에 의존하는 양상도 ‘현실’ 아닌가?

조계완 산업부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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