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현 ㅣ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언론학 박사)
“선장 백○○씨 살아있다.” 27년 전 그 일은 바로 전에 일어난 사건인 양 눈앞에 나타났다. 디지털은 과연 ‘
영원한 현재’를 빚어내는 기술이었다.
신문 지령 1만호를 맞아 <한겨레>는 인터넷 서비스가 없던 시절의 기사를 디지털로 변환해 지난달 27일부터 서비스하고 있다. 1988년 창간호부터 2004년 말까지의 신문 기사 검색이 가능해졌다. 그 때문에 부끄러움과 고인에 대한 죄송함의 딱지가 내린 필자의 오래전 기억도 더 이상 자료실의 곰팡이 핀 신문 더미에 숨어 있을 수 없게 됐다.
지령 1만호를 맞은 한겨레는 창간호 부터 2004년 말까지의 신문기사를 디지털화해 5월27일 부터 제공하고 있다.
무려 292명의 생명이 스러진 1993년 10월의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참사 5일 뒤 배와 함께 주검으로 인양될 이 배의 선장이 사고 수역에서 빠져나와 “살아있다”고 한 보도는 언론학과 강의실에서 종종 인용되는 오보 사례이다. 4년차 사회부 기자였던 필자는 사고 직후 짜인 특별취재반에 편성돼, 수사본부가 차려진 전주지검 정주지청(현 정읍지청)으로 내려갔다. 사고 이튿날부터 서해훼리호가 향해 가던 전북 부안군 위도 선착장 주변 주민들 사이에는 “백 선장을 목격했다”는 놀라운 소문이 돌았다. 필자는 담당 부장검사를 스토킹하듯 따라다니다 “수사해볼 생각”, “지명 수배할 계획”이란 말을 듣고 득달같이 편집국에 보고했다. 그렇게 오보에 한 발을 담갔고, 그 뒤 사흘간 국내 대부분 언론이 달려들어 온갖 추측성 기사를 쏟아내는 보도 전쟁이 이어진다.
돌이켜 보면 선착장 주변 주민들의 목격담을 시간을 두고 확인했다면 피할 수 있는 오보였다. 주민이 본 사람은 백 선장과 외모가 비슷한 다른 인물이었음이 며칠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기사 제목도 ‘백 선장 봤다는 주민들 목격담 나와’ 정도가 최선인 것을 “살아있다”고 따옴표로 보도해 강렬한 인상을 줬다. 기자보다 나은 정보를 갖고 있지도 않은 검사의 말을 듣고 ‘확인’이라며 스스로 공신력을 부여한 것도 잘못이었다.
자주 잊게 되는 원칙이지만, 언론은 취재원이 어떤 말을 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내용의 진위도 최선을 다해 확인해야 한다. 기자는 미확인 정보를 퍼나르는 사람이 아니라 보도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고 사실을 검증하는 전문 직업인이다. 취재원의 말이 허위로 드러났을 때, 말한 사람이 공인이어서 발언 사실 자체가 중요한 기사가 되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보도한 언론사는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취재원이 한 말을 확인하지 못했을 때 언론은 흔히 큰따옴표에 그 말을 넣는다. 이렇게 하면 판단은 독자 몫이란 신호를 주면서도, 읽는 이의 시선은 강하게 끄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뉴욕 타임스> 같은 언론사는 ‘제목에 따옴표를 써서는 안 된다’는 편집 지침을 마련해 두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의 따옴표 사랑은 유별난 면이 있다. 지난해 ‘좋은저널리즘연구회’가 2016년 기사를 통해 한국 10대 일간신문과 뉴욕 타임스가 제목에 따옴표(작은따옴표 포함)를 쓰는 비중을 조사해 보니, 한국 일간신문은 10개 가운데 6개꼴인 59.1%인 반면, 뉴욕 타임스는 2.8%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영국의 <더 타임스>는 따옴표 제목이 하나도 없어, 따옴표 사용이 불가피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한겨레는 지난달 말 “윤석열도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 검찰, ‘윤중천 진술’ 덮었다” 기사(2019년 10월11일치)의 부정확함에 대해 사과했다. 사과문에서 밝혔듯이 취재원이 한 말의 내용 확인이 불충분했고, 인용부호를 써 과장된 제목을 뽑은 것 등이 원칙을 벗어났다. 이번 사과는 취재보도준칙을 전면 개정한 것과 함께, 정정과 사과에 주저하지 않는 신뢰의 언론으로 거듭나겠다는 한겨레의 다짐을 표현한 것이다. 한겨레가 권력에 굴복한 것도, 윤석열 검찰총장에 관한 후속 취재를 그만둔다는 뜻도 아니다. 현직 검찰총장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휘하 조직에 형사고소를 하는 게 타당했냐는 의문도 여전하다.
진실보도에 매진하는 일이 남았다.
bh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