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란 ㅣ 진주 <단디뉴스> 전 대표
그해 진주의 6월은 뜨거웠다. 전국 곳곳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가 거리를 메웠고, 온 나라가 민주주의 투쟁 현장이었다.
경상대학교 신문사는 1987년 8월3일자에 ‘진주여! 그날 우리는 하나였다’라는 제목으로 진주 6월 항쟁을 6월15일부터 18일까지 날짜별로 기록하고 있다. 아래 1987년 6월17일자 내용 중 일부를 발췌했다. 대학생 기자의 단편 기록이지만 당시 지역 언론들도 보도하지 못했던 생생한 상황 일지이다.
“… 오후 4시25분 인문대·사회대생 2백여명이 남해고속도로 위에서 포위됐다. 일부는 연행되었으나 쫓기던 1백여명의 학생들은 진양군 정촌면 화개리 화동마을 앞 고속도로를 점거하여 지나가던 LPG차량 2대를 세웠다. 그 차량을 필두로 「구속학생 석방하라」고 하면서 시위를 벌이며 지도부는 경찰과 협상을 하였으나 실패했다.
오후 6시40분경 「죽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횃불을 들고 시위를 계속하는 동안 학교 정문 앞에서 대치되었던 학우들이 차량행렬과 합류했다. 8시15분 개양철교를 지나 정촌파출소를 전소시켰다. 8시23분경 전경은 40여발의 최루탄을 일시에 발사하여 혼란한 틈을 타서 LPG차를 빼앗아 갔으며 20여명의 학우들이 연행되었다. 8시33분 후퇴하던 학생 일부가 부산발 진주행 비둘기호를 정지시켰다. 기관사 정찬일씨는 「학생들의 뜻은 알겠으나 이런 식으로 해결해서야 되겠느냐」고 설득했다. 9시30분경 전경들은 선로에 올라왔고 최루탄을 난사하여 기차를 탈취해 갔다. …”
당시 서울 언론들은 ‘지방 과격시위’로만 호도했다.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남해고속도 3시간 장악’ ‘경상대학교 마산-진주 열차도 한때 막아’로 내세워, 부산·대전 등 심야 시위와 파출소 폭파 등 시위 양상을 보도했다. <중앙일보>도 머리기사로 ‘지방도시 시위 과격화’ ‘경전선 열차 48분간 불통, 가스차 탈취 고속도로 막아’를 보도하면서 경상대 학생들이 고속도로를 점거한 사진을 실었다. <문화방송>(MBC)은 경상대학교 남해고속도로 점거 현장을 30초 동안 영상으로 내보냈고, 시위로 인한 각 지역 재산상의 피해를 보도했다.
1987년 6월 항쟁은 4·13 호헌조치를 철회시키고 12월 대통령선거를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었다. 대중은 각성했고, 스스로 정치 개혁의 주체가 되어 국가의 부정과 불평등과 불균형을 바꾸어갈 수 있다고 여겼다. 전국 곳곳에서 여러 형태의 시민사회단체가 조직됐다. 진주지역에서도 청년·노동·문화 등 각 분야의 단위조직이 결성됐고 지역 내 폭넓은 대중운동으로 이어졌다. 지방자치가 공론화되고 풀뿌리 지역 언론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지역 내 시민사회단체라는 새로운 지형이 생긴 것도 이 무렵이다.
아직까지 6월 항쟁은 대부분 서울 수도권 중심의 혁명적 서사로 알려져 있다. 변방의 지역 항쟁들은 ‘그 외 지방’으로 남았다. 가까운 역사인데 지역 6월 항쟁은 묻힌 역사에 가깝다. 영화 <1987>은 알아도 진주의 1987년을 모르고 6월 항쟁은 알아도 진주지역의 6월 항쟁을 알지 못하고 있다. 지역민조차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번에 경상대학교 신문 기록을 본 40대 중반의 시민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서울 항쟁)만 알고 정작 진주에서 어땠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6월 항쟁이 진주의 역사였다는 것에 다소 놀라는 듯했다.
지역민이 모르는 지역의 6월 항쟁. 역사가 되려면 제대로 기록하고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6·10 항쟁을 법정 기념일로 지정했고, 그해 20주년을 맞아 광역지자체별 기념사업회가 구성되고 백서 또는 자료집이 발간됐다. 진주지역에서도 ‘서부경남유월민주항쟁약사’가 발간됐다. 항쟁을 주도했거나 적극 참여했던 몇몇의 기억과 증언록이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까지 지역 6월 항쟁 기록 작업이 거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데는 객관의 힘이 필요하다. 지역의 6월 항쟁이 역사로 이어지려면 앞으로 더욱더 다양한 증언을 확보하고, 사실 중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지역민의 과제이기도 하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서울 수도권의 6월 항쟁이 아니라, 아직 기록되지 않은 전국 곳곳의 6월 항쟁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1987년 6월은 어떠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