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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역에서] 앞마당 시립미술관 뒷마당 한라산 / 이나연

등록 2020-06-15 18:37수정 2020-06-16 14:59

이나연 ㅣ 제주 출판사 ‘켈파트프레스’ 대표·미술평론가

올해 초 제주도 서귀포에 자리잡은 기당미술관의 운영위원으로 위촉됐다. 첫 위원회를 설레며 기다리는 내내 많은 기억과 감정이 교차했다. 기당미술관은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살던 동네에 있는 미술관이어서 그랬다. 한두 시간 남짓한 위원회에 참가하려면 서울에서 제주공항까지 이동하고도 리무진 버스를 타고 다시 서귀포로 가야 했다. 그래도 네다섯 시간의 이동거리는 장애가 아니었다.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30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시간여행이자 추억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심이 깃들었다. 내가 <응답하라 1988>을 찍는다면 꼭 찾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1987년에 삼매봉 기슭에 지어진 기당미술관은 어릴 적 동네의 풍경이자 걸핏하면 드나드는 놀이터였다. 미술관 바로 옆에는 삼매봉도서관도 있었다. 미술관과 도서관이 있는 완벽하게 문화적인 동네에서 유년기를 보낸 행운을 누린 셈이다. 미술을 거점 삼아 삶을 꾸려가는 내게 그 미술을 시작하게 된 원형을 찾아보라면 기당미술관 아랫집에 살던 시기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하리라.

기당미술관이 위치한 곳은 서귀포 서홍동이다. 더 작은 구획으로 불리는 이름은 남성마을. 기당미술관이 지어지는 걸 보고 자란 내 고향이 바로 남성마을이고, 기당미술관으로 진입하는 길 오른편에 집이 있었다. 코로나로 자꾸 미뤄지던 운영위원회가 5월28일에야 열렸다. 미술관의 아트라운지가 회의실이었는데, 원형으로 빙 두른 통창 너머로 한라산이 보였다. 탁 트인 풍경에 눈이 시원해지면서, 프레임 속 풍경이 새삼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상설전시장엔 변시지 작가의 80년대 작업들이 20여점 걸려 있다. 역시 아름다웠다. 건물 밖을 나오면 제주식 원형 볏짚단인 ‘눌’을 형상화한 건물이 주변 나무에 파묻혀 있다. 이 역시 아름답다.

어릴 적부터 이렇게 아름다운 미술관이 집 앞에 있었으므로, 나는 아름다움을 떠올리면 미술작품 혹은 미술관을 연상하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울 미(美)에 기술 술(術)은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기술을 말한다. 미술관은 그 기술들이 집약된 검증된 작품들을 모아 대중에게 미를 소개하는 구실을 한다. 하지만 미의 기준이란 게 모두 다르다. 어느 책에서 ‘미’라는 한자의 어원을 읽은 적이 있다. 중국 사막지대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이 글자는 양(羊)이란 글자에 클 대(大)를 붙였다고 전한다. 그 지역, 그 시대의 사막 사람들에겐 큰 양이 곧 미였다. 미의 기준이란 환경에 따라 그토록 달라지는 것이었다. 다른 환경에 살고 새로운 눈을 얻어 새삼 보는 동네미술관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사실 기당미술관은 나의 살던 고향이어서 개인적으로만 특별해선 안 되는 곳이다. 문화예술의 불모지라는 제주라는 섬에서, 서귀포시에 세워진 국내 최초의 시립미술관이 기당미술관이다. 서귀포 법환동 출신인 재일사업가 기당 강구범 선생이 1986년 서귀포시에 증여한 미술관은 1987년 7월1일 정식으로 개관했다. 그 당시 현대미술의 흐름을 소개하고자 지은 전격 미술관이고, 지금까지 소장품이 660여점에 이른다. 초대 명예관장이자 20년 넘게 관장직을 이어온 변시지 화백의 상설전시장은 그것만으로도 기당미술관을 찾을 이유가 된다. 1년에 1억원 남짓한 예산으로 전시를 운영하고 교육프로그램까지 꾸리는 열악한 미술관의 상황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최근에 카탈로그 레조네(전작도록)를 발간한 변시지 화백을 기리면서 기당미술관 자체에도 재정비와 재조명의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최초의 시립미술관인 까닭에 역사를 품은 길이만큼 낡은 시스템과 시설을 재생할 때가 온 듯하다.

운영위를 마치고 미술관을 나와 예전에 살던 집터를 지나 길 건너편에 있는 칠십리시공원을 걸었다. 공원을 따라 걸으면 천지연폭포가 나오고, 부두를 지나고 시내로 들어가면 서귀포초등학교가 나온다. 걸어서 등교를 하던 기억이 났다. 미술관에서 나와 산림이 우거진 공원을 지나고 폭포를 지나 바닷길을 한 시간씩 걸어 학교엘 갔었다. 돌아보니 꽤 미(美)적인 유년기였다. 이렇게 초네따이(시골아이의 제주 사투리. 도시아이는 시에따이라고 한다) 인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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