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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이재용과 양창수, ‘또 하나의 가족’ / 안영춘

등록 2020-06-16 15:57수정 2020-06-17 02:40

‘상피’(相避)는 친인척 사이의 비리와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 운영됐던 유서 깊은 제도다. 기원은 부모와 자식이 재상급 관직에 동시에 오를 수 없도록 한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오른다. 일종의 관습법이었다. 성문화는 고려 시대에 이뤄졌다.(<고려사> ‘형법지’) 조선 시대 들어서는 적용 대상도 크게 확대됐다.(<경국대전>)

일정한 촌수 안에 드는 친인척끼리는 같은 관아에서 관직을 맡지 못하게 했고, 과거 시험에서 감독관과 응시생의 관계로 마주치지 못하게 했다. 친인척이 당사자인 송사의 재판관도 맡을 수 없었다. 심지어 어떤 지방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관리는 그 지방에 파견하지 못하게 했다.

뜻은 좋으나, 연좌제 성격이 없지 않다. 오늘날은 혈연을 이유로 공직의 진출, 승진, 보직을 사전에 제한하는 제도는 없다. 가령, 2010년 당시 유명환 장관 딸의 외교부 특채가 문제 됐던 건 두 사람이 부녀지간이어서가 아니다. 채용 과정에 여러 특혜 의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정하게만 경쟁했으면 시비 삼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도 사법 절차에서만큼은 ‘이해충돌’ 가능성을 사전에 촘촘하게 걸러낸다. 법관이 해당 사건과 특수관계에 있을 경우 법원이 직무 집행에서 배제하는 ‘제척’, 법관 스스로 벗어나는 ‘회피’, 소송 변호인이 법관을 배제하도록 요구하는 ‘기피’까지 3중의 법률적 장치가 있다.

양창수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위원장이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의 수사 심의를 ‘회피’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과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의 오랜 친분을 이유로 들었다. 두 사람은 고교 동창이다. 하지만 실상은 회피가 아닌 ‘사회적 제척’이다. 문제 제기가 거세지자 뒤늦게 회피를 결정한 것이다.

제척 사유에는 ‘사건에 관해 전심 재판 또는 그 기초가 되는 조사, 심리에 관여했을 때’도 적시돼 있다. 양 위원장은 대법관 때 이건희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에서 무죄 의견을 냈다. 두 사건 모두 경영권 승계의 불법성과 관련돼 있다. 이 부회장과 양 위원장은 이 사건으로 만나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가족’이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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