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 ㅣ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결혼 제도가 이성애 중심적인 것도 문제이지만, 결혼 제도 자체가 억압적이다! <가가 페미니즘>을 쓴 퀴어 연구자 주디스 잭 핼버스탬의 통찰이다. 그는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화되더라도, 중하층 계급이나 유색 인종 등은 결혼 제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과는 별 관계가 없으며, 따라서 여전히 제도로부터 배제된 위치를 벗어날 수 없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핼버스탬은 기존의 결혼 제도 내부로 사람들을 포섭하려는 식의 담론과 운동은 억압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는 ‘약한 정치학’이라고 규정한다. 대신 그는 결혼 제도 자체의 억압성을 문제시하는 ‘강한 정치학’을 주장한다. 예컨대 이런 질문들이 가능하며, 필요하다. 결혼 제도는 어떻게 불평등 강화에 기여하는가? 결혼 제도가 국가나 자본의 통치술로 활용되고 있지는 않은가? 미혼이나 다양한 가족 형태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결혼 상태가 사회적으로 더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하나의 신분이 된 것은 아닌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갈등이 인천국제공항공사 이슈로 또다시 불거졌다. 기존 정규직 노동조합의 반대 시위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정책 기조나 운동 방향 자체가 ‘약한 정치학’이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우선, 현재 공기업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정규직화는 말 그대로 비정규직 자체를 ‘철폐’하지 못한다. 사실 정규직화라는 말 자체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위계적인 구별이라는 전제를 유지하는 셈이다. 고용안정성이 떨어지는 민간 영역의 수많은 비정규직은 물론 특수고용노동자나 프리랜서 등은 여전히 충분한 노동권 보장의 바깥에 있다.
정규직의 수라도 늘어나니 다행인 걸까. 하나, 멀쩡히 있는 결혼 제도가 상승혼이 불가능한 하층 계급이나 여성 등에게는 맥락에 따라 오히려 손해를 끼치기도 하는 것처럼, 정규직이 사회적으로 추구의 대상이 되는 사회 체계에서 생겨나는 억압도 존재한다. 가족돌봄의 필요나 학업 병행 등을 비롯한 여러 이유로 정규직 일자리를 선호하기 어려운 계층(특히 여성, 청(소)년, 노인 등 근로취약계층), 상용직 근로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영역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집단 등의 노동은 정규직화에 모든 이슈가 쏠려 있는 상황에서 더욱 사각지대로 밀려난다.
노동정책에도 ‘강한 정치학’이 필요하다. 이미 많은 논자가 지적해왔던 것처럼, 그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허구적 대립에 함몰된 논의를 상대화하는 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법적 용어도 아니기는 하지만, 사전적으로만 보면 고용 기간이 정해져 있는 노동자가 정규직,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비정규직일 따름이고, 즉 정규직은 고용안정성의 다른 이름 그 이상이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고용안정성은 좋은 일자리의 여부를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여러 기준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도 대중들은 물론 정부 관료의 인식 속에서, 정규직은 고용안정성뿐만 아니라 임금 수준이나 복지 혜택, 노동권의 보장, 사회적 위신에 이르기까지 다차원에 걸쳐 비정규직과 비교해 높은 위계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정규직 노동이 공기업이나 대기업 등 진정한 상층 노동을 위주로 묘사되고, 비정규직 노동은 주로 거리의 투쟁으로만 대표되는 재현 체계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을 테다.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의 이분법을 넘어, 노동자들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일 경험을 할 수 있는지, 그 노동은 사회적 인정을 받고 있는지, 노동을 통해 실질적인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지 등으로 눈을 돌려보자. 중소기업에서 계약직을 거쳐 정규직이 되었는데도 퇴사하는 경우가 왜 이렇게나 많은지, 정규직 전환이 되어도 고용안정 외에는 기존 정규직 노동자와 완전히 다른 대우를 받게 됨에도 전환 노동자들이 왜 온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는지, 여기에 정부의 책임은 없는지와 같은, 중요하지만 ‘나중의’ 일로 여겨졌던 다른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