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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어느 계급투쟁의 기억 / 조형근

등록 2020-06-28 18:34수정 2020-06-29 09:45

조형근 ㅣ 사회학자

1998년 봄부터 여름 사이 현대자동차는 몹시 아팠다. 8000여명 희망퇴직, 1600여명 무급휴직에 정리해고 방침도 나왔다. 노조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파업에 들어갔다. 6월30일, 사측은 4830명의 정리해고를 노동부에 신고했다. 공장 입구에 수십 개의 기동중대가 배치됐다. 노조원 60여명이 수배됐다. 그야말로 ‘계급투쟁’이었다.

정리해고제는 1996년 12월26일, 당시 여당 신한국당이 날치기로 통과시킨 법이었다. 이제 노동자는 잘못이 없어도 경영상 필요로 해고될 수 있게 됐다. 변형근로, 파견근로제도 함께 통과됐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 저때 태어났다. 자본과 그 대변자들이 가열찬 계급투쟁으로 성취한 무기들이다.

1997년 1월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됐다. 화이트칼라와 대학생도 함께했다. 대학원생이던 우리도 매일 명동으로 나갔다. 명동성당의 지도부 천막에 귤 박스 사 들고 간 기억도 난다. 그런 이들이 많았다. 40여일에 걸쳐 350만명 넘게 시위에 나섰다. 87년 6월항쟁 참가자가 400만명이었으니 거의 전민중적 항쟁이었다. 체제가 흔들리는 조짐에 정치권이 봉합에 나섰다. 1월21일,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만나 재논의를 시작했다. 3월10일 여야는 정리해고제 2년 유예에 합의했다.

아이엠에프(IMF) 위기가 자본에겐 오히려 기회였다. 위기를 극복하자며 만든 노사정위원회가 1998년 2월 유예조항 삭제에 합의했다. 민주노총 배석범 위원장도 가담했다. 현대자동차가 정리해고의 물꼬를 트겠다며 나섰다. 노조는 결사반대였다. 노동시간 단축, 근무형태 변경, 일자리 나누기 같은 자기희생으로 3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하겠다며 호소했다.

자본과 정권이 원한 건 실질적인 비용절감보다는 상징적인 정리해고였다. 물꼬를 터야 했다. 7월31일, 사측이 정리해고 대상자 1589명의 명단을 통보했다. 8월18일, 여당 국민회의 노무현 부총재가 이끄는 중재단이 도착했다. 노사정위의 노동계 인사들도 나섰다. 결국 277명 정리해고 합의가 이뤄졌다. 사실은 항복이었다. 식당 여성 노동자 143명이 포함됐다.

이들은 파업 기간 내내 ‘떴다, 아지메 부대’를 자처하며 치열하게 싸우고 먹였다. 그러다 희생양이 됐다. 정리해고 후 노조에 직고용됐는데 같은 일을 해도 임금이 줄고 신분도 열악해졌다. 함께 해고된 남성 노동자들은 복직됐다. 여성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복직을 노사협의에서 다뤄달라고 노조에 요청하자 노조 대의원대회는 거부했다. 이 모든 과정이 다큐멘터리 영화 <밥·꽃·양>에 담겼다.

정리해고자 중 상당수는 임금이 줄고 신분이 바뀐 채 그대로 일했다. 수천 명씩 대규모 정리해고가 진행된 은행도 그랬다. 2001년 무렵, 금융노조의 연구 용역에 참여해서 노조 관계자들을 두루 인터뷰한 적이 있다. 곤혹스럽던 말들이 떠오른다. “금융사고는 대개 비정규직이 칩니다. 이분들이 이제 정규직도 아니고 신분이 불안정하니까….” 비정규직을 없애야 한다는 취지였다는 건 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일단 신분의 벽이 생기자 노동자 사이 불신의 벽이 이렇게 모욕적으로 높아졌다. 을들끼리 싸우고 상처 줬다. 그러자 비정규직이 점점 많아졌다. 자본이 보기에 좋았다. 정리해고 후 비정규직화는 자본에게는 신의 한 수였다.

인천국제공항 보안업무 정규직화로 여론이 뒤숭숭하다. 특히 젊은이들이 비판적이라고 한다. 그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무한경쟁으로 내몬 세대다. 시험이 그나마 유일하게 공정한 장치라며 기대는 이들이다. 노력과 보상 사이의 비례성 원칙이 가진 문제나 능력주의의 함정이라면 다른 데서도 지적이 많으니 더 보태지 않겠다. 정부의 공기업 정규직화 방침이 임금총액제와 맞물려서 정규직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 방침이 서로 충돌하니 갈등을 조장한다.

오늘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별, 차별 자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만 집중했다. 저렇게 치열한 자본의 계급투쟁이 있었다. 어쩔 수 없다며 동조한 이들도 있었다. 그 바람에 차별이, 을들 사이의 싸움이 당연해졌다. 구별도 차별도 안 된다며 맞섰던 우리다. 100년 전 친일 과거사도 바로잡자면서 20년 남짓 저 역사를 바로잡지 못할까? 다만 계급투쟁에 대해서라면 자본에게 배워야 한다. 수업료는 이미 충분히 냈다. 너무 비싸게, 많이 아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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