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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비건으로 보신하기 / 이라영

등록 2020-07-01 17:05수정 2020-07-02 09:27

이라영 l 예술사회학 연구자

재난지원금으로 특수를 누리는 먹거리가 육고기다. 그중에서도 삼겹살과 한우라고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재난지원금으로 한우를 먹었다는 인증 사진이 종종 올라오더니 정말 수요가 많았던 모양이다. 한우를 찾는 사람이 많아져서 이제는 한우 가격이 일시적으로 오르기까지 했다. 평소에 소고기를 자주 먹던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겠으나 단지 비싸서 선택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재난지원금은 먹거리 선택의 폭을 넓혀줬다.

한편 감염병이 찾아오는 주기가 점점 더 단축되면서 환경과 생태에 대한 담론이 중요하게 인식되는 중이다. 지난 1년 동안에만 아프리카돼지열병, 오스트레일리아 산불, 여전히 진행 중인 코로나19 등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근본적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훨씬 커졌다. 기후위기와 감염병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으며, 기후위기의 큰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축산업이다.

물론 평소에 잘 사 먹지 못하던 고기를 어쩌다 사 먹은 사람들이 졸지에 기후위기의 주범처럼 왜곡되는 건 부당하다. 고기 먹는 개인들을 지적하거나 비난하는 행위로는 바꿀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다만 범유행 감염병으로 인한 재난지원금이 비록 일시적이라고 해도 다시 육식 소비로 이어지는 흐름은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거리두기로 인해 늘어나는 배달 음식과 일상에 자리 잡은 마스크 사용 등으로 엄청나게 쌓여가는 일회용품 쓰레기를 무심히 넘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세계 교통수단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전체 배출량의 약 14%인데 축산업은 이보다 더 많은 18%의 배출량을 차지한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 5부제를 실시하는 기관들이 있지만 실은 육식 소비를 줄이는 게 더 효과적이다. 감염병 확산 이후 ‘뉴노멀’이나 ‘그린 뉴딜’ 등이 언급된다. 우리의 ‘뉴노멀’은 식생활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먹던 대로 먹으면서 ‘뉴’를 기대하긴 어렵다.

매우 느리지만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 서울시교육청이 급식에 채식 선택제를 도입했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을 넓혀가며 직접적인 행동으로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늦은 결정이다. 이제 군대와 교도소 등 단체급식을 하는 다른 기관에도 채식 선택제가 도입되면 좋겠다. 공공의 밥상이 변하면 인식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개개인의 인식이 바뀌어 제도가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제도가 먼저 바뀌어 개개인의 인식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실제로 학교 급식에서 채식 선택제를 도입한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좋은, 맛있는, 영양가 있는, ‘예의 있는’ 음식 등은 대체로 고기다. 정확히 말하면 고기여야 한다는 관념이 꽤 지배적이다. 단백질에 대한 편견도 그렇다. 단백질을 고기와 동일시한다. 단백질은 곧 동물성으로 연결 짓고 식물성 단백질은 ‘진짜’ 단백질이 아닌 듯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풀만 먹고 사는 소는 어떻게 ‘단백질’이 되었을까. 식물에도 단백질이 있고 동물이 이를 섭취하고 사람은 이 동물을 먹는다.

아몬드, 캐슈너트와 같은 견과류, 호박씨나 헴프시드 같은 씨앗류, 브로콜리, 녹두, 귀리, 키노아, 아스파라거스, 물냉이, 아티초크, 아욱, 버섯 등에도 단백질이 많다. 대표적으로 단백질이 많은 음식으로 알려진 콩은 물론이요 콩으로 만든 두부, 특히 얼린 두부는 단백질 함량이 더 높다.

여름이다. 보신을 위해 동물성 단백질을 더욱 많이 찾는 시기다. 여름이 아니어도 한국에서만 매일 닭 250만마리가 도살된다. 인간의 몸보신을 위해 수많은 동물들이 극한 고통 속에 놓여 있다. 여름에는 세번의 ‘복날’이 있다. 보신을 위한 음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할 때가 아닐까. 보릿고개를 넘지도 않으며 과식의 유혹이 넘실대는 세계에서 이제 보신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나 홀로 보신이 아니라 ‘함께-먹기’를 고민하는 보신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비건 복날’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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