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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한-일 관계와 중-미 관계 / 리팅팅

등록 2020-07-12 17:57수정 2020-07-13 02:38

리팅팅 ㅣ 중국 베이징대 교수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뉴노멀’로 접어든 이후,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 여부와 군함도 역사 전시 등의 문제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여와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출 문제 등이 새로운 갈등을 부르고 있다.

한·일 간 마찰이 지속되는 근본 원인은 지역 차원의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발생한 구조적인 모순 때문이다. 한국은 지속해서 종합적인 국력을 높여왔고,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뛰어난 위기관리·통치 능력을 보여줬다. 또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추가 발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는 등 한·일 격차가 축소되면서, 지역 차원에서 일본이 누려온 전통적인 우위가 잠재적 도전을 맞고 있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다방면으로 견제에 나선 이유다.

이른바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등에 대한 논쟁은 역사 인식과 기억의 문제일 뿐 아니라, 근대 식민 지배와 전후 형성된 지역 질서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와도 연관돼 있다. 현 동북아 질서 재편은 전후 질서의 심도 깊은 조정과 직결돼 있다. 식민 지배와 전시 행위에 대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문제가 역사 논쟁 형태로 재조명되고 토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법 활용력과 국제적 영향력은 일본이 한국을 견제하는 데 주로 사용해온 수단이다. 페리 앤더슨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교수는 국제법은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지탱하고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서구적인 산물이라며, “패권국과 그 우방을 위해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적인 힘”이자 “위협적인 권력 수단”이라고 규정했다.

근대 식민 지배국이자 전후 동아시아 내 미국의 핵심 맹방인 일본은 국제법을 활용해 식민지를 확장했다. 패전 뒤에도 주변 국가와의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며 장기간 역내에서 중요한 지위를 유지했다. 최근 갈등 상황에서도 일본은 보수적인 국제법 해석에 기대 자국은 ‘국제질서 수호자’이고 한국은 ‘문제 유발자’라는 이미지를 만들려 하고 있다.

국제 영향력 측면에서 일본은 오랜 기간 축적한 대미 로비력과 G7 회원국이란 지위 등을 활용해 한국을 견제한다. 이를테면 북한에 대한 포용적인 태도와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 등 한국과 미국 등 기타 주요국 간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방식이다. 지나치게 단편적인 개괄이지만, 멀리서 한국을 바라보는 서방국가엔 일정한 설득력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한-일 관계의 특징은 최근 무역마찰, 홍콩 문제 등 일련의 사안을 두고 격렬하게 맞서고 있는 중-미 관계와 비슷한 점이 많다. 겉보기엔 대단히 복잡해 보이지만, 국제질서 재편에 따른 구조적인 경쟁이라는 근본 원인은 같다.

전통 패권국인 미국이 신흥대국인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도 비슷하다. 미국은 중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며, 국내적 입법을 통해 자유무역 질서를 파괴하고 전통 우방국에 압박을 가해 중국을 고립시키는 등의 방법을 택했다. 우방국의 지지를 이끌어내고자 중국의 이념과 제도 등 차이점을 강조한다. 일본의 한국 견제 방식과 유사하다. 도전자를 견제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주도해서 마련한 기존 지역 또는 국제무역 질서를 파괴하는 역설적인 측면도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은 세계 패권국가로서 국제법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이 더 강하고, 동원할 수 있는 자원도 더욱 풍부하다는 점이다.

물론 한-일 관계와 중-미 관계를 단순 등치 할 순 없다. 다만 후발국가와 전통강국 사이 구조적인 모순에 따른 갈등이란 점에선 분명히 유사성이 있다. 중·한 양국은 후발국가란 점에서 최근 갈등을 다룰 때 구조적인 문제와 심층 원인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견제의 정치와 선발국들의 또 한번의 ‘사다리 걷어차기’에 무조건 동조하는 것보다 후발주자에게도 공평한 질서를 구축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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