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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오토픽션과 사생활 침해 / 김은형

등록 2020-07-15 15:12수정 2020-07-15 20:26

오토픽션. 자기자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어원의 ‘auto’와 허구를 뜻하는 ‘fiction’을 조합한 단어로 ‘자전소설’이라는 말로도 널리 쓰인다. 자서전과 소설의 중간지대쯤 위치하는 오토픽션은 작가 자신의 삶과 경험을 소설 안에 녹여 넣은 작품이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비롯해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국내외 수많은 작가들이 빼어난 오토픽션을 내놓으면서 하나의 장르처럼 자리잡았다.

오토픽션은 작가의 생생한 경험에 기반해있기 때문에 강렬한 흡입력을 갖기도 하지만 현실과 허구의 줄타기라는 긴장은 때로 작품 외적인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작품에 등장한 주변인물들의 사생활 침해 논란이 대표적이다. 최근 소설가 김봉곤의 단편 ‘그런 생활’이 사적대화 무단 전재 파문을 일으켰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이 작품에서 C누나로 등장하는 인물은 “우리가 했던 많은 대화 중 성적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을 그대로 쓴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트위터에 공개하며 수상 취소와 변호사 선임 이후에야 진행된 수정사실의 공지를 요청했다. 그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소설에 그대로 담기면서 사생활 침해 피해가 발생했다. 주변 사람들은 소설 속 C 누나가 나란 걸 다 알 정도다”라고 고통을 호소했다.

‘나는 나의 삶을 쓴다’고도 명시한 김봉곤 작가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기록해온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대표작 <나의 투쟁>을 쓰면서 송사에 휘말리고 가족들과 절연했다. 크나우스고르는 자신의 삶을 해부하듯이 소설로 써 “자전적 소설의 견고한 경계를 무너뜨렸다”고 평을 받으며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작품에서 존경받는 교사이자 지역 정치가였던 아버지를 알콜중독자로 묘사하면서 삼촌 등 친척들이 분노를 터뜨리며 <나의 투쟁>을 배신자를 뜻하는 ‘유다의 문학’이라고 지칭했다.

2007년 국내에서는 소설가 공지영의 작품이 공개되기도 전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았다가 기각된 사건도 있다. 공 작가가 <중앙일보>에 ‘자신의 이야기’를 표방하며 연재예정이었던 <즐거운 나의 집>에 대해 전 남편인 이아무개씨가 “공씨와 이혼할 당시 ‘혼인 중 일어났던 일에 대해 실명으로 허위 사실을 발표할 수 없다’는 합의서를 작성했으나 공씨가 이를 위반했다"고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일본에서는 사생활 침해 문제제기로 소설 판매금지와 위자료 배상 판결이 나기도 했다. 재일동포 소설가 유미리의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라고 주장한 유 작가의 친구가 개인정보 노출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1994년 제출한 출판금지와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재판부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개인의 일상생활에 피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며 유 작가의 최종 패소 판결을 내렸다.

김은형 논설위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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