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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숨&결] 성경은 동성애를 모른다 / 한승훈

등록 2020-07-20 17:37수정 2020-07-21 09:39

한승훈 ㅣ 종교학자

21대 국회에서도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었다. 2008년 17대 국회 당시 고 노회찬 의원 등이 발의한 이후 이미 6번째 시도다. 차별 금지는 현행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가치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도 한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권고를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헌법 정신에도 부합하고, 국제적 기준에도 적합하며, 특별한 이해관계의 충돌도 발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 법이 10년 이상이나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차별금지법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반대세력은 보수 기독교다. 이들은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이에 대한 시정과 손해배상을 판결할 수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합법화”라 부르고 있다.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 이루어지는 퀴어퍼레이드의 한편에서는 매번 이들에 의한 반대 집회가 이루어진다. 개중에는 국가인권위원회법과 각종 인권조례 등에 이미 존재하는 동성애 관련 조항들을 폐지하라고 주장하는 분파도 있다. 이들은 동성애가 “합법화”되면, 기독교 신앙과 선교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받을 것이라 믿는다.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기독교 인구가 절대다수인 서구 국가들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동성애는 애초에 “불법”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들에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다.

사실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는 대단히 다양하다. 한쪽에는 동성애 반대를 신앙의 핵심처럼 취급하는 세력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차별받는 성소수자에 대한 환대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 물론 양쪽에는 모두 경전적인 근거가 있다. 전자는 레위기와 바울 서신 등에 명시된 남성 간 성교 금지 조항을 내놓는다. 반면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이런 구절들이 당시의 이교적(異敎的)이거나 억압적인 성문화를 다루고 있을 뿐, 동성애 일반에 대한 금지 교리로 연결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금기들은 돼지고기를 먹는 일, 거짓말이나 욕설을 하는 일 등보다 특별히 심각한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지도 않다. (물론 이런 ‘죄’들 때문에 목회자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신학교에서 쫓겨나는 일은 좀처럼 없다.) 대신 성경, 특히 예수의 가르침에는 용납하기 어려운 타자라도 차별 없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신학자가 아닌 종교학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답은 좀 더 간단하다. 기독교의 경전인 히브리성서와 신약성경은 동성애라는 개념을 “알지 못한다”. 같은 성 사이의 섹스와 애정을 포괄하는 ‘동성애’라는 일반 개념은 19세기의 성과학 문헌에서 성적 도착의 일종으로서 처음 등장했다. 이것이 ‘질병’이 아닌 성적 지향의 유형으로 확인되고 당사자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여진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따라서 고대에 작성된 종교 경전이 동성애를 반대 혹은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해석의 차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시대착오다.

물론 남성 간, 혹은 여성 간 섹스를 지칭하는 말은 여러 문화에서 폭넓게 발견된다.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끌림이나 성적 행위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이루어져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은 물론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대부분의 종에 있어서 마찬가지다. 이런 종에게 성적 접촉은 생식만이 아니라 친밀함, 동맹, 지배 등과도 관련되어 있다. 우리 가운데 이성애를 선호하는 개체가 많은 것은 이성 간의 성적 접촉만이 재생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발생한 자연선택의 편향일 뿐이다.

물론 통계적 다수일 뿐인 이성애를 너무나 신성하게 여긴 나머지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교리를 내세우는 종교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혐오를 성경이나 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월권이자 불경이다. 그것은 신을 쪼잔한 차별주의자로 만들고, 혐오를 신앙의 자리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예수는 동성애를 없애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 그를 살해한 것은 교리 전문가인 사제와 율법학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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