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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판결문 다시보기

등록 2020-07-22 17:57수정 2020-07-23 16:21

김태규

법조팀장

대법원 무죄 선고 뒤 입장을 발표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
대법원 무죄 선고 뒤 입장을 발표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
최근 대법원은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전원합의체 심리 결과를 대법원이 생중계까지 하겠다고 나선 것을 보면, 정치적으로는 예상된 바였으나 법리적으로는 예상하기 쉽지 않은 결과였다. 유죄(벌금 300만원)를 선고한 항소심의 논리가 단단했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성남시장 시절이었던 2012년 4월 자신을 비방하고 성남시청 등에서 소동을 벌이는 등 각종 기행을 보인 친형의 정신질환이 의심된다며 분당보건소장 등에게 ‘강제입원 절차를 진행하라’고 여러차례 지시했다. “정신질환으로 자신 또는 타인을 해할 위험이 있다고 의심되는 자를 발견한 정신보건전문요원은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진단 및 보호를 신청할 수 있다”는 정신보건법 25조를 적용·시행하라는 것이었다. ‘친형 또는 가족의 동의와 대면진단 없는 강제입원은 안 된다’며 이를 거부하는 보건소장과 직원들을 이 지사는 “일 처리를 못 하는 이유가 뭐냐. 사표 내라. 합법적인 사항을 처리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는 취지로 질책했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다.

6년 뒤인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둔 경기지사 후보 티브이 토론회에서 김영환 바른미래당 후보는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하셨죠?”라고 물었다. 이 지사는 길게 해명했는데 간추리면 “그런 일 없습니다. 김영환 후보께서는 저보고 ‘정신병원에 형님을 입원시키려 했다’ 이런 주장을 하고 싶으신 것 같은데 사실이 아닙니다”라는 것이었다.

대법관 7명의 다수의견은 “선거의 공정을 위하여 필요하다는 이유로 부정확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들 모두에 무거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 지사의 발언이 거짓말인지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다수의견은 “허위로 단정할 만한 내용이 없다” “허위라고 평가할 순 없다” “공표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적었다. “중요한 부분에서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경우에는 세부적으로 진실과 약간 차이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이를 허위사실 공표로 볼 수 없다”는 판례도 인용했다. 이 판례는 공교롭게도 대법관 5명의 반대의견에도 등장한다. 반대의견은 이 지사의 발언이 “정신병원 입원 절차에 관한 자신의 관여 사실을 적극 부인하는 답변”이라며 “구체적 사실에 대한 거짓 해명”이라고 봤다. 다수의견은 이 지사의 발언이 ‘중요한 부분에서 객관적 사실과 합치된다’고 본 반면, 반대의견은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판결 선고 당일 정신없이 기사를 처리했지만, 대법관 12명의 팽팽한 의견대립을 지켜보며 과연 어느 쪽이 옳은 판단인지 고민은 더 깊어졌다. 의견을 들어봤다. 평소 ‘이 일로 지사직까지 박탈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던 중견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선거 기간에 진실을 다투는 가장 유용한 방식인 티브이 토론에서 후보자는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 현직 판사는 “다수의견은 ‘사법 소극주의’에 기댔다는 인상이고, 반대의견은 피 토하는 심정으로 쓴 것 같다”고 했다. 전직 고위법관은 “다수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고 촌평했다.

항소심대로 형이 확정됐으면 이 지사는 앞으로 5년간 피선거권까지 잃고 선거보전금 38억원을 토해내야 했다. 유력 단체장들이 권력형 성범죄로 임기를 못 채우는 상황에서 이 지사의 캠페인 발언이 그렇게 큰 벌을 받아야 하는 중범죄냐는 정서도 존재할 수 있다. 이 지사가 124만표 차이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는데 ‘문제적 발언’이 그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겠느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재명 판례’가 향후 선거운동에 끼칠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찜찜함은 가시지 않는다.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중 어느 쪽이 옳은지 독자 여러분도 판단하시면 좋겠다. 대법원 누리집에 36쪽짜리 판결문 전문이 공개돼 있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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