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창간된 한겨레신문은 올해 5월18일 지령 1만호를 맞았다. 1만호를 기념해 독자가 보내준 축하글로 만든 당시 지면의 일부.
이봉현 ㅣ 저널리즘책무실장(언론학 박사)
수화기 속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막상 신문 끊어달라 할 때는 울컥했어요.” 경남 창원시의 백아무개(50)씨는 <한겨레> ‘찐 팬’이라 했다. 고3 때 용돈으로 5주의 창간 주식을 산 뒤, 보수색 짙은 영남에서 30년 넘게 오로지 한겨레를 구독했다. 그는 “남들이 ‘변했다’ 할 때, ‘그래도 한겨레만 한 게 있냐’고 두둔했는데, 요즘은…”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관련 기사에 대해 “나도 여자다 보니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이 바뀐다. (성추행에 대해) 비판은 해야 하지만, 문제만 크게 부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읽다, 돌아갈 수 있으면 다시 가겠다”는 말에는 ‘애증’이 묻어났다.
7월은 한겨레가 독자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고민이 깊은 시간이었다. 평소보다 서너배 많은 신문 독자가 항의전화를 걸었고, 일부는 신문을 끊었다. 첫 파고는 텔레비전 편성표의 게재를 중단하면서 왔다. 여론면을 확장하면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볼 수 있는 편성표를 뺐는데, 예상과 달리 수십명이 항의전화를 했다. 한눈에 들어와 신문 편성표를 요긴히 활용하는데, 왜 일방적으로 빼냐는 항의였다. 한 독자는 “나이 든 사람을 자꾸 소외시키는 것 같다”며 “지면을 많이 차지하지도 않는데 그런다”고 섭섭해했다.
박 시장 사건에서 파도는 너울이 됐다. 이 사건은 어디에 강조점을 두느냐에 따라 한국 사회를 둘로 갈랐는데, 신문 독자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쪽이 많았다. 이 무렵 걸려온 독자 전화에 반복해서 나오는 말이 있었다. “내가 알던 한겨레가 자꾸 아닌 것 같다”, “아침에 읽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지난해 말부터 오래 망설이다 끊는다” 등이었다. 구독을 중지한 이들 가운데는 주주 또는 20~30년 된 독자가 꽤 있어 예사롭지 않았다. 10여명에게 전화를 걸어 좀 더 들어봤다.
주주이자 창간 독자인 심아무개(60대·남)씨는 박 시장 사건에 대해 한겨레가 “너무 성급히 입장을 정한 것 같다”며 “시간을 갖고 사건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는 없느냐”고 했다. 대학 시절 공사장에서 일해 창간 기금을 냈다는 전아무개(53·남) 독자는 “전체 독자가 아니라 여성계 등 특정 층을 대변해 기사를 쓰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박 시장 사망이란 상황이 갑작스럽고 낙담도 큰데, 애독하는 신문에서도 정서적 지지를 못 얻어 화가 난 듯 보였다. 송파구의 권아무개(54·여) 독자는 사건 이후 닷새 넘게 신문을 그냥 접어두고 있다며 “우리도 위로가 필요하거든요”라고 말했다. 소수지만 반대 의견도 있었다. 오아무개 독자는 “박 시장의 업적(부각)이나 동정론이 더해질수록 피해자가 위축된다”며 왜 피해자 입장에서 기사를 쓰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온라인에서는 특히 피해자에 연대하는 한겨레 기사에 공감하는 의견이 많았다.
함께 길을 걸어온 오랜 독자를 잃는 것은 퍽 속상하다. 요즘 시대에 신문을 보는 독자는 업어주어도 부족한 존재다. 이런 독자가 자꾸 한겨레 기사에 ‘불편’을 호소한다. 지난해 조국 장관 임명 때부터 잦아진 현상이다. 언론은 독자에게서도 독립적이어야 하지만, 열성 독자가 이러니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누구는 시대가 변해서라고 한다. 전통 진보와 새 진보의 갈등이라고도 한다. 실제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독자는 공정, 성평등, 차별 철폐, 생태·환경, 동물권 같은 주제에 감수성을 보인다. 이런 새로운 가치를 담은 뉴스가 신문 독자들에게는 익숙지 않을 수 있다. 권위주의 시절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적 모순을 질타하던 시각과 개인 존엄의 무거움에 주목하는 시각은 결이 다르고 박자가 엇갈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두 독자층이 마주 서서 길항하는 관계만은 아닐 것이다. 같은 진보이지만 미시적으로 다른 견해 사이에서 협력과 생산적 논쟁의 공론장을 만드는 숙제가 한겨레 앞에 놓였다. 플랫폼별 독자층에 맞춤형으로 편집된 뉴스를 제공하는 등 단기적·기술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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