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영입된 분들 중에는 능력이 출중한 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선발한 분들은 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스스로 만든 기반이 없으니까요. 사회의 모순을 정면으로 찌르는 날카로운 발언은커녕 당대표의 함구령에 일제히 입을 다무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만은 꼭 고치고 싶다는 갈망을 느낀 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 금태섭
김용태 ㅣ 정치인
작년 이맘때 책 한 권을 읽고서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막연한 느낌만 있을 뿐 딱 떨어지지 않았는데 그 책이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명확해지자 저 스스로 미안한 마음에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철승 교수의 <불평등의 세대>란 책입니다.
이철승 교수는 말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 청년세대의 좌절과 분노가 금태섭 전 의원이나 제가 속한 세대, 즉 386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청년 세대가 불행한 건 그 부모인 386세대가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양질의 일자리와 높은 임금, 권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386세대는 자신들도 모르게 로또 세대가 되었습니다. 80년대 대학에 들어와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자신들만의 의식세계와 집단신념을 공유했습니다. 조직 활동이 몸에 배면서 네트워크 구축의 필요성과 기술을 습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또를 맞은 것처럼 시대가 주는 기회를 남김없이 누렸습니다. 윗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하게 주류를 장악하고 확장하고 연장해 왔습니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윗세대는 거의 다 물러났지만 사회 진입 때부터 대부분 정규직이었던 386세대는 살아남았습니다. 오히려 대기업·공공부문-정규직-노조를 통해 지위 보장은 물론 높은 임금을 받는 철의 삼각지대를 구축하였습니다. 반면 아랫세대는 중소기업-비정규직-비노조의 불안한 지위와 낮은 임금에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86세대의 아랫세대를 향한 잔인한 희망고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당신들이 겪는 모든 고통은 우리가 아니라 1 대 99 세상 책임이다. 우리를 끌어내리려 하지 말고 당신들 모두 우리 자리로 올라올 수 있도록 세상과 싸워야 한다.”
이 희망고문이 얼마나 허망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결국 문제는 386세대가 장악한 주류 권력을 어떻게 해체하고 아랫세대에게 이전하느냐입니다. 이철승 교수는 사회적 협약을 통한 ‘세대간 연대 임금’을 도입하자고 말합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근로시간을 나누면서 조직에 숨통을 틔우고 청년 고용을 늘리자는 겁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런 흐름을 만들어낼 곳이 어디일까요? 바로 정치권입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386세대의 득세는 사회 일반 어느 분야보다 넓고 깊습니다. 정치권의 세대교체는 까마득해 보입니다.
그간 미래통합당의 인적 충원은 명망가 중심의 인재 영입이었습니다. 정권을 오랫동안 담당하다 보니 천하의 인재를 애써 찾을 필요가 없었고,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정치권력마저 갖겠다고 제 발로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법조, 행정 등 특정 분야에 치우쳐 정치 정당이 아니라 법조당, 정부당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습니다. 기준도 성공한 명망가 위주다 보니 영입 연령은 높아지고 젊은이는 찬밥 신세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진 당내 만연한 권위주의적 문화는 청년을 의례 동원의 대상이자 들러리에 불과한 존재로 만들었던 게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미래통합당의 인적 구성 문제는 세대-계층-지역-직업 대표성이 현저하게 부족해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미래통합당에서 청년들의 설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좁디좁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청년의 생생한 생각과 간절한 바람을 반영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인적 충원은 나름 가치를 지향하는 인재 영입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세대-계층-지역-직업 대표성을 고려하여 분야별로 후보군을 만들고, 일찍부터 원칙과 방법을 공개한 후 공천 과정을 진행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들, 국회 보좌진, 시민단체나 노조 관계자 등에게 일정한 정치 사다리를 만드는 노력도 한 게 사실입니다.
다만 형식은 그러할지 모르지만 내용은 386세대의 집단신념과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연장하는 데 방점이 찍혔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386세대가 설정한 가치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그들이 만든 네트워크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기여할 인재들 위주로 영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네트워크의 끄트머리에서 시작하여 당의 주류인 386세대의 기대에 부응하는 청년만이 올라갈 수 있는 그런 사다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들 영입 청년들이 내세우는 정책들은 청년 세대를 대변한다고 표방하지만 정작 386세대 네트워크의 기득권을 수호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금 전 의원님, 비례대표 여성할당제처럼 연령대별 공천 쿼터제를 아예 법으로 도입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또다시 정년연장 논의가 시작될 모양입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니 당연한 일이라고 할 게 아닙니다. 전면적인 임금피크제,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이 전제되지 않으면 저는 정년연장 반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