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목소리가 나오고 바꿔보자는 움직임이 생기려면 말로 하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국회가 먼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합니다. 그중 하나로 보편증세를 생각해봤습니다. 세금을 내는 국민은 정치를 대하는 눈높이가 높아지고 야무지게 정치를 감시하게 됩니다. -금태섭
김용태 ㅣ 정치인
금 전 의원님, 큰 결심 때문에 이모저모 신경 많이 쓰고 계실 텐데 무엇보다도 건강에 각별히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굳이 과거 대통령들의 불행한 역사를 꺼낼 필요도 없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지 않으면 초 단위로 바뀌는 세상 흐름을 따라잡기는커녕 독선적인 국정 운영과 보복만이 난무하는 정치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국회의원 대다수는 분권형 개헌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대통령 자리에 가까이 갔다고 믿는 대선주자들은 개헌을 원하지 않습니다. 또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여 국회로 넘기자는 방안은 국민들이 달가워하질 않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라는 데는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국회의 권한을 확대하는 것에는 반대가 많으니 개헌에 이르는 길은 가물가물합니다. 국민의 정치 불신, 국회 불신이 만들어낸 슬픈 자화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국회 불신을 없애줄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보자,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보편증세’ 문제를 초당적으로 다뤄보자는 금 전 의원의 제안은 매력적입니다. 증세는 “정치인이 무덤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선별증세가 아니고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보편증세를 주장하는 것은 어느 정치인에게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의당 대표의 보편증세 주장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린 것은 이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보편증세 주장은 결과의 평등을 실제화하기 위해 복지 확대를 겨냥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진보정당으로서 저소득층에게도 세금을 걷자는 것은 파격적입니다.
증세를 논의하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증세 없이 복지 없다”는 명제입니다. 이 명제는 정치인의 양심과 용기의 문제처럼 거론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정권에서 집권여당 원내대표가 이 말을 두고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복지비용은 세금으로 충당되니 복지를 확대하려면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또한 나라가 커진 만큼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늘려야 할 복지비용을 반드시 증세로만 해결해야 하느냐입니다.
정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복지비용 규모는 총세수의 그것과 비례합니다. 총세수가 커져야 복지비용 규모도 커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총세수 규모는 무엇이 좌우할까요? 이 대목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낮은 세율, 넓은 세원”이라는 과세 원칙이자 보편 법칙입니다.
먼저 낮은 세율 문제입니다. 총세수를 늘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세율 인상입니다. 그중에서 법인세, 소득세의 세율을 올리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정권은 법인세, 소득세 세율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정권이 의도하는 대로 복지가 확대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위적인 세율 인상은 단기적으로 법인세와 소득세를 더 걷게 만들지만 몇년만 지나면 오히려 법인세와 소득세의 총세수가 줄어드는 부메랑을 맞게 됩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세금은 기업이나 개인에게 투자와 소비를 줄이는 반작용을 일으킵니다. 결국 경제 규모와 총세수가 줄어들고 복지가 쪼그라들거나 나랏빚이 확 늘어나는 악순환이 벌어집니다. 총세수를 늘려 복지를 확대하는 방법에는 왕도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지속적인 투자와 소비를 유도할 수 있는 적정한 수준의 세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특히 국경이 무의미해지는 글로벌 경제 시대에는 경쟁국보다 낮은 세율을 유지하되 투자와 일자리를 확보하여 총세수를 늘려가는 정책을 펴나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넓은 세원 문제입니다. 저는 40%에 육박하는 소득세 면제자에게 적은 액수라도 세금을 걷는 정책에 찬성합니다. 이들에게 세금 납부는 일시적으로 소득이 줄어들게 하지만 복지 혜택이 확대되면 이를 상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국민개세주의를 확인하여 국민 통합의 기초를 세우는 것이고 조세 형평을 달성하여 건강한 국민 경제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복지 확대를 위해 보편증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한 것 같지만 소극적인 방편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증세에 앞서 기업과 개인이 투자와 소비를 주저하지 않는 활기찬 경제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규제를 혁파하고 민간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지금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이왕 세금 문제가 나왔으니, 초미의 국민적 관심사인 부동산 세금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과연 세금으로 부동산을 잡을 수 있을까요? 그것이 자가든, 전세든, 월세든 말입니다. 항간에 이 정부는 부동산을 잡고 싶은 게 아니고 세금을 더 걷고 싶을 뿐이라는 아우성은 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