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통일부 시민단체 사무검사 유감 / 황필규

등록 2020-07-30 17:09수정 2020-07-31 02:40

황필규|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인권에 대한 스스로의 무지와 몰이해, 무시와 부정에 당당할 수 있게 해주는 현실이 싫다. 현실이 혼란스러운 것은 아니다. 인권의 원칙이나 일관성 없는 모습들이 현실에 투영되고 작용과 반작용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통일부는 일부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계기’로 북한 인권과 탈북민 정착 지원 분야 등록단체 25곳에 대해 사무검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이 분야 총 95개 비영리법인 중 ‘운영 실적보고를 하지 않거나, 보고 내용이 불충분하거나, 보고 내용으로 볼 때 추가적인 사실 확인을 요하는’ 경우라고 했다. 법인이 아닌 소관 비영리민간단체 64곳에 대해서도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요건 점검’에 들어갔다. 관련 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법적 근거는 있다. 민법, 통일부 소관 비영리법인의 설립 및 감독에 관한 규칙,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과 같은 법 시행령에 관련 규정이 있다. 하지만 대북전단 살포 문제가 ‘계기’이고, 전단 살포와 딱히 관련도 없는 북한 인권과 탈북민 정착 지원 분야 단체 전반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 단체들에 대한 위하효과를 노리고 길들이기에 나선 것은 자명해 보인다. 통일부가 사후적으로 “결사의 자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라든가 “긴밀히 소통하면서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얘기하더라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검사’와 ‘점검’의 맥락도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그동안 통일부가 처음부터 혹은 정기적으로 파악했어야 하는 운영 실적보고나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요건을 왜 지금에서야 새롭게 살펴보겠다고 하는 것인지. 통일부가 당연히 이미 했어야 하는 일들을 하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단체들에 대해 뭔가를 하기 전에 먼저 통일부에 대해 감사나 국정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동안 통일부가 제대로 역할을 못 해온 것이 시행 불가능한 규정 때문인지, 전 정권에서는 건드리지 못했던 단체들의 힘 때문인지, 담당 공무원들의 게으름 때문인지,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냥 관행 때문인지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이유이건 일차적으로 ‘검사’되고 ‘점검’되어야 할 것은 통일부일 수밖에 없다.

낯익은 풍경이다. 정부에 비판적이면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건강한 시민단체들을 도태시키고 친정권 단체들만을 양산하려던 시절이 있었다. 심지어는 친정권 단체들에 자금을 지원해 시민단체들이나 시민운동을 공격하는 용역을 주기도 했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정권에 대한 특별한 위협 혹은 골칫거리로 여겼던 단체들에 대한 대응은 남달랐다.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에 대해서는 하고자 하는 일이 너무 다양해 한 부처 소관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비온뒤무지개재단에 대해서는 보편적 인권이 아닌 협소한 주제를 다룬다는 이유로 법인 등록을 회피했었다. 피해자와 지원·지지자 간의 긴장·갈등관계, 부적절한 규정들과 불완전한 회계처리, 인권옹호단체와 사회복지단체 간의 차이 등이 오히려 더 본질적인 문제일 수 있는데 정의기억연대를 악마화하고 시민단체의 통제 강화만이 답인 것처럼 끌고 가는 흐름도 있다. 현재진행형이다.

우리가 가슴 아파해야 하는 것은 통일부, 혹은 정부의 태도만은 아니다. 최근 통일부의 사무감사 문제를 포함하여 지난 십여년간 일련의 시민사회 통제와 억압, 공격의 역사를 일관된 인권의 언어로 평가하고 비판하는 흐름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인권 현장을 잘 모르는 이들, 본인이 인권을 잘 안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가장 인권을 내세우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성향이나 친소관계를 넘어설 때 인권의 길이 있다고 믿는다. 인권의 원칙과 일관성을 제대로 지키고 보여주지 못할 때, 결국 남고 드러나는 것은 권력 지향성, 즉 권력의 획득과 유지의 성향 혹은 이념적, 단선적 접근일 수 있다. 북한에 억류된 선교사를 얘기하면서 남한으로 강제납치된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문제도 얘기할 수 있을 때, 북한 노동교화소를 비판하면서 남한의 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도 비판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인권의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새로운 통일부 장관이 왔다. 잘못된 것은 과감히 바로 고쳐야 한다. 과거, 현재, 미래를 함께 바라볼 줄 아는, 그리고 스스로를 먼저 돌아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