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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추미애, 문제는 인성이 아니다 / 이주현

등록 2020-08-03 18:24수정 2020-08-04 09:47

이주현 ㅣ 정치부장

초여름의 평화로운 저녁, 안부 전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엄마와 소소한 일상을 한참 얘기하는데 돌연 아버지가 전화를 바꿔달라고 하셨다.

“얘야, 잘 알아둬라. 추미애는 지금 검찰개혁을 위해 싸우고 있는 거야. 그렇게 강단 있게 검찰과 맞설 사람이 없어.”

너무 진지한 어투여서 아무 말 않고 가만히 들었다. 이른바 ‘검·언 유착’ 사건에 대한 전문수사자문단 소집 문제를 놓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충돌하던 무렵이었다. ‘파사현정’ 사자성어를 화두로 던지고 휴가를 낸 추 장관은 산사에서 생각에 잠긴 모습을 에스엔에스(SNS)로 내보내며 윤 총장과의 결전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로부터 또 한달이 지났다. 그때보다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검·언 유착 수사 중단을 권고하면서 수사에 김이 확 새는가 했더니, 휴대전화 유심 압수수색 과정에서 사건 당사자인 한동훈 검사장과 수사팀의 정진웅 부장검사가 몸싸움을 벌였다. 수사심의위원회의 판단을 무력화할 수 있는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수사팀의 조급함, 수사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한 검사장의 ‘오기’가 한몫한 결과였다. 본인들이야 의도치 않았겠지만 이 막장극의 배경을 따지다 보면 추미애, 윤석열 두 사람을 지목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에게 다시 물었다. 추 장관이 여전히 검찰개혁의 적임자라고 생각하시는가요?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니…” 잠깐 뜸 들이던 아버지는 말꼬리를 살짝 흐리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70% 정도쯤 아닐까….”

과거 추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낼 당시 당내에선 그를 향한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 독단적인 태도로 앞서나가다 일이 꼬여버린다는 거였다. 그는 이런 비판에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누가 뭐라든, 하던 대로 했다. 그가 대표를 지내는 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고,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했으며,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뒀다. ‘운이 좋아서’라는 박한 평가도 있지만, 여하튼 그는 뛰어난 성적으로 대표직을 완수했다.

한번 정한 경로는 우회 또는 수정하는 법 없는 그의 직진 본능은 법무부 장관이 되자마자 유감없이 발휘됐다. 올 초 검찰 인사를 통해 윤 총장의 측근들을 ‘재배치’하면서 전쟁을 개시했다. 정부여당 봐주기 아니냐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청와대 선거개입, 하명수사 의혹’ 사건 검찰 공소장을 공개하라는 국회 요구를 거절했다. 야당의 공세가 지나치다 싶을 땐 “그만하라” “질문 같은 질문을 하라”면서 거칠게 맞섰다. ‘왜 검찰을 봐주냐’는 취지의 질문을 한 같은 당 의원들에게도 가차 없이 레이저 눈빛을 발사했다.

그가 지난 6월 민주당 초선 의원들과의 워크숍에서 윤 총장을 겨냥해 “말을 잘라먹었다” “말 안 듣는 총장” 등 노골적인 비난을 퍼부었을 때,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인성의 문제”라고 촌평을 날려 화제가 됐다. 그러나 사실, 문제는 인성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를 거침없이 비판한다고 해서 바로 인성이 나쁘다고 말하진 않는다. 김종인 위원장 본인이야말로 ‘문재인’ ‘안철수’ 안 가리고 비하에 가까울 정도로 매서운 직격탄을 날려왔다. 그렇다고 해서 김 위원장을 놓고 인성 시비를 벌이진 않는다.

야당 반대로 출범이 늦어지고 있긴 하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현 정부의 검찰개혁 과제가 꼴이 갖춰지는 중이다. 하지만 제도를 잘 운영하고 개혁을 제대로 해나가려면 여론의 지지와 관심 또한 굳건해야 한다.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선 ‘정치인 추미애’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의를 주장하는 ‘자기표현’이 아니라, 대중을 ‘설득’할 책무 말이다. 그러려면 현재 추 장관의 개혁에 대한 열정만으론 부족하다. 막스 베버 말대로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 즉 균형 감각이 절실하다.

추 장관에게 70% 이상의 신뢰를 보내는 우리 아버지와 통화를 마친 엊저녁, 베버의 명문을 노트에 적어보았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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