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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셋째 누나 이경진 / 박진

등록 2020-08-10 17:52수정 2020-08-11 09:40

박진 ㅣ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대통령 취임 특별사면에서 단 한명 제외된 기결 양심수 이석기(43)씨의 어머니 김복순 여사(85)는 과천종합청사에서 1인 시위를 하다 결국 실신해서 병원으로 실려 갔다.’ 2003년 4월29일 <경향신문>의 기사다. 당시 어머니는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고 건강이 악화된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사면 제외 소식을 듣자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어”라고 말하며 바로 농성에 들어갔다. 석방대책위가 ‘청와대 1천㎞ 도보순례’를 하며 모자 상봉을 촉구한 끝에 이석기씨는 이례적인 1주일간 특별휴가로 노모와 상봉할 수 있었다.

당시 국방부 3급 군무원으로 근무했던 넷째 누나 이경선씨는 수배 중인 동생에게 생활비를 보태주었다는 이유로 기무사에 끌려갔고 정직 2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는다. 이후 처분에 대한 이의청구소송에서 승소하고 명예회복을 했으나 조사받은 때부터 발병한 ‘다발성 경화증’으로 병원에 실려 간다. 긴 투병 끝, 뇌사 상태에 이른 누나는 2005년 6월11일 세상을 떠났다. 기무사 조사 도중 구토와 하혈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나 ‘강압수사’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어머니는 3년 뒤인 2008년 작고했다. 특사로 풀려난 막내는 넷째 누나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석기씨와 가족들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통합진보당 비례의원으로 국회에 들어갔지만 2013년 소위 ‘내란음모’ 사건으로 다시 구속되고, 위헌정당해산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징역 9년을 선고받아 8년째 복역 중이다. 셋째 누나 이경진씨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부터 청와대 앞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 천일을 맞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 누나는 쓴다. “촛불정부 출범에 박수 소리가 아직 가시지 않은 때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한달 뒤에는 감옥 문이 꼭 열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대통령의 결단에 작은 힘이라도 실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참 어리석고 순진한 생각이었다 싶습니다. 그날로 아직 청와대 앞을 못 떠나고 있습니다. 누나도 포기했다고 사람들이 말할까봐, 누나도 힘드니까 접었다며 동생이 슬플까봐 못 떠나고 있습니다. ‘석기야,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내 명이 붙어 있는 한 누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습니다.”

그 누나에게도 병마가 찾아왔다. 갑상선 미분화암 진단을 받았다. 1차 수술에서 후두와 성대, 식도와 갑상선과 임파선을 모두 제거했다. 현재 2차 수술까지 마치고 입원 중이다. 목소리는 상실했고 음식물 섭취나 호흡도 옆구리와 가슴을 통해 가능한 상황이다. 누나는 수술 전날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료진 당부를 들은 뒤 “엄마랑 동생도 가고, 나도 이렇게 가나… 감옥 안에서 자기 탓하면 안 될 텐데 어떡하냐”며 눈물지었다. 하지만 막내에게 남긴 편지는 강인했다. “네가 나올 때까지 나는 무조건 살아 있을 거다. 그간 살아오며 약한 자들에게는 진 적 있다. 정에 이끌린 탓이다. 하지만 강한 자에게는 한번도 져본 적 없다. 무서운 암이지만 이겨낼 수 있다고 나도 믿는다. 꼭 건강히 만나자. 보고 싶다. 너무 자책 마라. 내가 열번 태어나도, 같은 일 열번 겪어도 너는 내 자랑이다. 아버지, 어머니 자식인 것도 나는 자랑스럽다. 잘 살았다.”

이석기씨의 죄가 무엇인지는 별론으로 하자. 그저 이 가족을 덮친 거대한 비극을 내버려둘 것인지 묻고 싶다. 8월25일부터 한달간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가 열린다. 국가보안법과 주변부로 밀려났던 여성들의 서사를 들려줄 예정이다. 국가폭력 이야기에는 남성들만 있지 않다. 남성들 이력과 달리 경력조차 되지 못한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어머니와 누나와 아내들도 있다. 그들의 인생과 싸움은 늘 서사 바깥으로 버려져왔다. 이석기씨 구속과 석방에는 고생하는 아들을 생각해 보일러도 틀지 않고 겨울을 나던 어머니 김복순씨와 넷째 누나 이경선씨, 치명적 병마 앞에서도 동생을 먼저 걱정하는 셋째 누나의 여생이 연관되어 있다.

이경진씨는 작은 가톨릭 봉사단체를 이끌며 미혼모·장애인 시설, 보육원 등에서 평생 일해왔다. 그는 “만약 일어날 수 있으면 가장 먼저 동생 석방시키고 환경, 청소년 일 하다가 죽고 싶다”고 말한다. 막내의 길고 긴 복역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남은 옥살이를 기다리기에 이경진씨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그의 막내가 빨리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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