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람ㅣ작가
지난달 중순까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석에서 마스크 착용을 거부했다. 미국 바깥에서 사회적 자원이 된 마스크의 분배 방법이 논의되는 동안, 그는 기상천외한 고집으로 ‘노 마스크’를 우파의 정치적 자원으로 바꿔놓았다. 대통령 뒤에서 ‘마스크를 거부할 권리’를 표방하던 공화당의 케빈 스팃 오클라호마 주지사는 감염 확진을 받은 뒤로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다가 최근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공화당의 루이스 고머트 하원의원은 얼굴 가리개에 묻은 바이러스가 입안으로 들어왔다는 궤변을 펼쳤을 정도다. 여러 차례 실시된 여론조사는 공화당 지지층의 마스크 착용 빈도가 미국인 평균보다 현저히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티마스크 진영은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자유주의’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웹매체 <복스>(Vox)의 한 기사에는 마스크 착용을 거부할 ‘헌법적 권리’를 고집하며 병원에 들어가려고 시도했던 환자의 일화가 소개되었다. 경찰을 불러 환자를 내쫓은 의사는 인터뷰에서 짓궂은 말투로 말했다. “우리 병원은 응급실이 아니라 사유시설입니다. 환자분이 자기 권리를 어디에서 쓸 수 있는지 잘 몰랐나 봐요.” 이런 반응은 본질을 회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의사는 표현의 자유 도그마를 감히 정면으로 부정하는 대신 이렇게 받아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마스크를 거부할 자유는 당신의 헌법적 권리입니다. 당신을 거부할 자유는 저의 헌법적 권리고요.” 하지만 똑같은 일이 공공시설에서 일어났다면? 마스크 착용이 공공적으로 강제되는 상황이라면?
플로리다의 안티마스크 시위를 주도했던 한 시민의 인터뷰 내용을 들여다보자. “내 주머니 속에 지금 마스크가 있습니다. (…) 하지만 누구도 내게 (마스크를 쓰라고)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자유가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외쳤던 시민혁명기 자유주의자들의 비장함마저 풍기는 이 논변은 단지 마스크를 쓰기 싫다거나, 마스크를 착용해야 할 의학적 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더 세련된 수준이다. 주머니 속에 정말로 마스크가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마스크 착용이 필요하다고 믿을 때조차 그것이 강요될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마스크를 벗어 보이겠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립항에 놓인 금기를 실행함으로써 자유의 범위를 형식적으로 확증하려는 이 태도는 오늘날 미국식 자유지상주의의 논리적 공허함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어떤 면에서 자유라는 개념이 정의 단계부터 철학적 시험대에 오른 것과 같다. 안티마스크 시위대의 ‘자유 증명’이 성공적이면 성공적일수록, 그들을 제외한 미국인들은 마스크의 부자유 속에 오랫동안 갇히게 된다.
금지를 금지하는 것만으로 자유가 성립할 수 있다면, 자유가 무엇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지는 물을 필요가 없어진다. 이런 식의 자유가 봉착하는 논리적 모순이 무엇인지는 이 분야의 대가인 트럼프 대통령이 몸소 보여준 바 있다. 우편투표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는 자신의 트위트 뒤에 팩트체크 경고창이 달렸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향해 표현의 자유 침해를 주장했다. (그리고 나는 이 주장을 어느 정도 수긍한다.) 그러나 이틀 만에 그가 서명한 행정명령에는 소셜미디어의 콘텐츠 검열 상황을 평가하여 연방정부가 면책 여부와 규제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검열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검열을 도입한 것이다. 일련의 상황에서 ‘자유’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걸까?
미국 사회는 자유를 손상 없이 다루는 방법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것만 같다. 그 누구도 자유를 억압당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고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마스크 금지법’을 서둘러 도입하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법이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한, 마스크 착용이야말로 절대적인 자유를 증명하는 완벽한 본보기가 될 테니까. 실없는 소리 같지만 이미 한번 벌어졌던 일이다. 케이케이케이(KKK)단의 인종차별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미국의 18개 주에서 입안했던 마스크 금지법은 1990년대 표현의 자유론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그들이 어느 쪽에 서 있는지가 나는 몹시 궁금하다. 여전히 얼굴을 마스크로 꼼꼼히 가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