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임 장관 등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러 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권은 민심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와 같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뒤엎기도 한다. 성난 민심의 파도를 견딜 수 있는 정권은 없다.
정권이 신뢰를 잃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회에 권력이 집중된 의원내각제는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치러 정권을 다시 창출한다. 대통령제는 다르다. 의회와 대통령은 임기가 보장된다. 대통령이 신뢰를 잃어 위기에 처해도 탄핵 아니면 물러나지 않는다. 대통령은 참모들을 교체해 민심을 수습해야 한다. 대통령제에서 인적 개편이 일상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여당의 총재였다. 당 대표, 사무총장, 원내총무, 정책위의장은 총재의 참모였다. 국무총리, 장관은 행정부 수반의 참모였다. 청와대 비서실장, 수석비서관은 대통령의 비서였다. 민심이 사나워질 조짐을 보이면 대통령은 당정 개편을 했다. 제왕적 대통령이었으니 반대가 있을 리 없는데도 인적 개편은 ‘단행’으로 포장했다. 자신의 잘못을 참모들에게 떠넘겨 목을 치며 민심을 달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두 가지다. 첫째, 대통령과 여당이 분리됐다. 둘째, 모든 장관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됐다.
이후 대통령은 여당에 대한 인사권을 상실했다. 인사청문회 부담으로 개각도 쉽지 않게 됐다. 민심 수습용 인적 개편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인적 개편을 잘하지 못한 배경에는 이런 구조적 원인이 있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은 책임감이 지나치게 강하다. ‘대통령이 잘하면 되지 참모들이 뭐 그리 중요하냐’는 생각이라고 한다. 인간적으로는 훌륭한 덕목이지만 정치적으로는 흠결이다. 그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노영민 비서실장과 5명의 수석비서관 일괄 사의를 발표하도록 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부동산 민심 악화가 그만큼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 임명한 후임 수석비서관들은 1주택자 아니면 무주택자였다. 14일 발표한 차관급 9명도 전원 1주택자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사를 통해 “다주택자는 고위 공직에 오를 수 없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문 대통령 성격으로 미루어 이 원칙은 임기 내내 지킬 것이다. 비장의 카드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민심은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이른바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의 선동은 집요하다. 야당 대변인은 “김조원 수석은 결국 ‘직’이 아닌 ‘집’을 택했다”고 비아냥댔다. 보수 신문은 ‘집 팔고 벼슬’이라고 조롱했다.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 정책 참모를 몽땅 교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당한 요구일까? 진짜 의도는 뭘까?
주호영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인식과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대통령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오만과 독주의 국정 운영부터 멈춰야 한다’고 했다. 대안은? 없다! 대안 없는 비판을 가하며 국정의 방향을 바꾸라는 건 정권을 내놓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태극기 부대가 차라리 더 솔직하다.
지난 2~3월 코로나 사태 초기에도 그랬다. 색깔론으로 문재인 정부를 흔들어 4·15 총선에서 무너뜨리려고 했다. 실패했다. 이번에는 코로나가 부동산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목표는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후년 대통령 선거 승리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무 참모에 이어 정책 참모들도 교체할까? 한다면 언제 할까? 청와대 사람들의 의견은 이렇다.
“시장에 정확한 시그널을 줬다. 시그널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장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공식 통계가 그렇다. 정책 라인은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책임자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꾸면 시그널이 바뀌어 혼선을 초래한다.”
당분간 바꾸면 안 된다는 의미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국가 경제 위기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강을 건너는 도중에는 배를 바꿔 타지 않는 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홍남기 부총리를 “경제 사령탑으로서 총체적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책 참모 교체는 시기보다 상황이 중요하다. 책임자를 바꿔도 부동산 시장에 혼선을 주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 위기를 어느 정도 넘겼다는 판단이 서야 한다. 노영민 비서실장 유임 소식에 야당 대변인이 “고구마 먹은 듯 갑갑한 인사”라고 논평했다. 일리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국정은 사이다가 아니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