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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사이코지만 괜찮으려면 / 조혜정

등록 2020-08-18 17:53수정 2020-08-23 13:18

조혜정 ㅣ 사회정책팀장

최근 끝난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현재, 내가 매년 정하는 ‘올해의 드라마’ 1위다. ‘인생 드라마’ 순위권에도 진입했다. 공감 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발달장애인(문상태), 형을 돌보는 게 삶의 전부라 세상과 단절한 무욕구자, 그리고 이 셋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를 누가 정한 건지 그 기준 한번 삐뚤구나 싶었다. 등장인물 대다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 셋을 무조건 품어주는 따뜻한 사람들이다. 실은 내가 몹시 불편해하는 ‘엄마 판타지’ ‘친구 판타지’의 결정체인데, 이상하게도 <사이코지만…>이 그려내는 판타지는 거북하지 않았다. 그 따뜻함의 밑바탕에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배려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이가 ‘괜찮은 정신병원’의 원장 오지왕이다. 누리집 인물 소개를 보면 그는 “뇌와 심리를 아우르는 3개 학문에서 박사학위를 모조리 딸 정도로 천재”다. 하지만 오지왕은 서울에서 후학을 가르치거나 유수의 병원을 운영하는 대신 “병상이 텅텅 남아도는 시골 촌구석” 바닷가에 이 병원을 지었다. 동년배 환자와는 내기 장기를 두며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일할 기회가 없었던 문상태에겐 벽화를 그리게 해 자아를 깨닫도록 하는 동시에 오랜 트라우마에서도 벗어나게 도와준다.

이런 오지왕을 “단 하나의 의료기관이라도 업무정지 처분을 당한다면 13만 회원의 의사 면허증을 모두 모아 청와대 앞에서 불태우고 ‘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이건 전국의 동네 의원 셋 가운데 하나꼴로 집단휴진을 벌인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대규모 집회에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한 말이다. 휴진한 의료기관이 지방정부의 업무개시 행정명령에 불응하면 2주간 업무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는데, 내리지도 않은 행정명령을 두고 이토록 자극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의사들이 극단적인 언사 속에서 집단휴진을 벌인 건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에 반대해서다. 동네 의원에서조차 진료 한번 받으려면 30분 대기는 기본이고, 시군구 주민은 가까운 시도의 큰 병원으로, 시도 주민은 서울의 더 큰 병원으로 몰리는 게 현실이다. 한국의 의사 수가 인구 1천명당 2.4명(한의사를 제외하면 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5명보다 30% 이상 적은데다, 지역별 의사 수 편차도 최대 14배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의사 수를 늘리고 ‘지역의사’도 육성하자는 게 정부 계획이다.

의협은 한국의 인구 감소 속도가 빨라 앞으로는 의사가 부족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늘리려면 의료수가를 올리라고 주장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 속도를, 나이 들면 병원 갈 일도 많아진다는 사실을 진짜로 몰라서 하는 말일까? 지금도 농촌 지역 의원의 소득이 가장 많다는 덴 눈감고 싶어서 하는 말일까?(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서 세전 월평균 수입은 농촌 의사가 1404만원으로 1310만원인 대도시보다 많았고, 의원이 1510만원으로 977만원인 상급종합병원보다 많았다.)

의사 면허증을 불태워도 면허는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 대한민국 소득 상위 10%의 훨씬 안쪽에 있는 이들(앞의 조사가 실시된 2018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상위 10%의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을 합친 월평균 소득은 1062만474원이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자면, 빨라도 10년 뒤에야 ‘시장’에 등장할 이들을 상대로 벌이는 섀도복싱을 보는 것 같다. 제 밥그릇은 제가 지키는 게 당연한 이치지만, 거기에도 ‘정도껏’이라는 윤리가 있다.

덧. 집단휴진을 ‘파업’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파업(단체행동권)은 노동자의 노동조건 향상을 목적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자영업자 또는 사용자가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벌이는 집단행동에 갖다 붙이라고 만든 이름이 아니다.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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