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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100일 만에 여론이 뒤바뀐 이유 / 신진욱

등록 2020-08-18 18:12수정 2020-08-19 09:36

신진욱 ㅣ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총선에서 여당이 180석의 거대 권력을 얻은 지 불과 100여일 만에 여론이 급변하고 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크게 넘어섰고,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도 긍정평가가 30%대로 떨어졌다. 정당 지지도에서도 미래통합당이 더불어민주당을 추월하거나 맹추격하고 있다.

지지율 수치보다 중요한 질적 변화가 있다. 유동적인 무당층과 20·50대뿐 아니라, 여권의 핵심 지지 기반이었던 30·40대 연령층과 젊은 여성층이 대거 이탈했다. 이것은 ‘조국 사태’가 최고조에 달했던 순간에도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이다. 이 모든 것이 2016년 탄핵정국 이후 초유의 사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부동산값 폭등, 박원순 시장 사건 등 ‘악재’가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다수 의석만 믿고 야당과 협치를 거부하는 등 독주했다는 지적도 있다.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충분하진 않다. 부동산값 폭등은 심각한 문제지만 총선 뒤에 생긴 현상이 아니다. 여야 협치도 좋지만 과거에 협치를 안 했다고 지지율이 폭락하진 않았다. 그러면 왜 지금 여론이 요동치는가?

두 힘이 맞물려 생긴 결과라고 본다. 하나는 여당 변수다. 거대 권력을 가지더니 민생 향상에 전념하지 않고 열성 지지층만 바라보며 국민 위에 군림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다른 하나는 야당 변수다. 보수야당은 의제와 담론, 투쟁 방식을 바꾸면서 지지층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이 두 광경이 나란히 펼쳐진 공간에서 민심이 크게 흔들린다. 여권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자기방어만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묻고 경청해야 한다.

우선 관심도와 동의의 기반이 좁은 정책들이 과도하게 부각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판 뉴딜’은 폭넓은 지지를 얻을 잠재력이 있지만, 디지털 뉴딜 등 각종 산업육성책은 다수 국민의 이해 관심이 아니다. 검찰개혁 정책은 원래부터 인지도는 높지만 지지층은 제한적인 의제다. 미디어리서치나 알앤써치 등의 최근 조사에서도 법무부 장관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보는 응답자는 30% 남짓이다. 열린우리당도 2004년 총선에 승리한 이후 정치개혁에 몰두하다 열성 지지층을 빼고 다 잃었다.

행정수도 이전이나 친일파 파묘와 같이 당면한 민생위기와 거리가 있는 이슈들이 돌출하는 것도 지지율 추락을 가속화한다. 이런 정책들은 대단히 논쟁적일 뿐 아니라, 더 큰 문제는 코로나 위기와 부동산 문제로 민심이 사나운 이때 여권발로 엉뚱한 논란이 계속 불거진다는 사실이다. 일자리를 잃었어요, 집값이 미쳤어요,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짖고 있는데 위정자들은 수도를 옮기자, 묘를 옮기자 한다. 국민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분노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정부·여당은 여러 중요한 민생·복지 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새 제도가 정착되어 혜택을 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그 예로 아플 때 쉴 수 있게 해주는 상병수당제를 도입하기 위해 정부는 2021년에 연구용역을, 2022년에 저소득층 대상 시범사업을 할 계획이며, 전국민고용보험제는 2025년에 완성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정책들은 매우 중요하지만 많은 국민에겐 이 정책들이 지금 체감되지 않는다. 현 정권이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그 정치적 결실은 차기 정권이 거둬들일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불안정한 국민계층의 당면한 상황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정치적 지지까지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공공의료 강화가 한 예다. 한국은 공공 병상 수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오스트레일리아는 69.5%, 프랑스는 62.5%, 독일은 40.6%다. 한국갤럽의 6월 조사에 따르면 의료서비스에 대한 공적 책임과 국공립 의료기관 확대에 무려 94%의 응답자가 지지했다. 코로나가 다시 확산되고 있는 지금, 병상이 없다는 무서운 소식이 들려온다. 이럴 때 정부가 공공의료 확대를 강력 추진한다면 국민의 큰 호응을 받지 않겠는가?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새로운 정책이 새로운 정치를 창출한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정책은 오래된 문제에 대한 처방일 뿐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열기 위한 전략이다. 총선 전에 여권은 코로나 대응이라는 국민적 관심사에 집중하여 큰 승리를 거뒀다. 총선 뒤에도 국민들의 삶에 밀착하는 정책으로 마음을 얻어야 더 긴 호흡의 개혁도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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