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희 ㅣ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박사 논문을 완성했던 1996년 가을, 당시 스탠퍼드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아오키 마사히코 교수가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특강을 하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었다. 미리 학위논문을 보냈던 터라 한국과 일본의 노사관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때는 나름 신선한 제도였던 미국의 성과급제가 갑자기 이야기의 주제로 등장했다. 그때 어이없어했던 그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런 식으로 임금을 주면 숙련된 노동자가 자기가 가진 기술과 지식을 나눌 이유가 사라지지 않을까? 일본에서는 절대 안 도입될 것 같은데.”
노사관계에서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제도도 다양한 한계를 노정한다. 핵심 소수 업무에만 정규직을 고용하고 나머지는 단기 계약직으로 채용하거나 외주화하거나 아니면 자동화하거나 그도 아니면 없애버리는 것, 과연 좋기만 할까.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보이지 않는 갈등과 반목은 협업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간접고용은 이중의 관리비용과 업무 조율의 어려움을 발생시킨다. 너무 낮은 임금을 주거나 자동화하여 일자리를 없애버리면 내수 시장에서의 구매력을 잃게 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그 과정이 순탄치 못했다. 특히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요원의 정규직화를 둘러싼 논란은 노동시장 밖의 청년과 비정규직에게 또다시 상처를 남겼다.
우리 시대의 청년은 시험으로 상징되는 무한 경쟁을 통한 성취야말로 최고의 선이며 유일한 가능성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형편이 어려운 경우 취업을 위해 재수, 삼수를 감수하는 것은 엄청난 재정적 압박과 심리적 부담을 동반하는 일이다. 따라서 공개채용 없는 전환 정책이 그들이 믿어왔던 공정 경쟁의 가치관에 심대한 균열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렇다면 입사 후 저임금과 고용불안 속에 고된 노동을 감내하던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것은 어떠한가. 상시 지속적인 업무인 만큼 지속적인 고용이 당연했을 터이나 그렇게 처우받지 못했다. 정규직화를 하겠다고 낮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헌신한 이들을 내몰고 더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는 사람으로 채워 넣는 것 역시 공정하지 못하다.
이렇게 대립하는 두 의견이 모두 옳을 수 있는가? 그렇다. 공정과 공정이 날카롭게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정책을 결정해야 할까. 사회 전체의 효율이란 차원에서, 또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사회의 가치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 지금 전환되는 일자리는 수백시간의 교육을 이수하고 수년간의 경험을 가진 사람을 전환하는 것이 비용이 유발되는 채용 절차를 거쳐 인력을 새로 충원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는 업무다. 적절한 처우를 받는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뿐 아니라 불필요한 경쟁이 완화된 사회를 원한다면 지금 실제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일자리의 정규직화보다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정책으로 공개채용의 원칙을 어기게 된 것에 대해, 그리고 일부나마 외부 노동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일자리의 수가 줄어든 것에 대해 구직 중인 청년에게 양해를 구했어야 한다.
그리고 아마도 진정한 양해는 이러한 정책의 효과로 우리 사회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때 구해질 수 있을 것이다. 직무가 요구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스펙을 갖추어야 간신히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거나 그나마 운이 없다면 구할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유사한 능력을 가지고 때로는 더 힘든 일을 하면서도 기업 규모에 따른 지불능력 차이로 훨씬 적은 임금을 받거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많은 희생과 분열을 감수하고 진행된 정책인데도 불구하고, 공공부문의 좋은 일자리에 비정규직의 일부를 포함시키는 것 외에 큰 진전을 보지 못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직도 많은 질문이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