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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재즈클럽 야누스 / 김은형

등록 2020-08-25 15:59수정 2020-08-25 19:14

2018년 11월 23일 저녁, 가수 박성연이 휠체어에 앉은 채 피아노, 콘트라베이스에 맞춰 ‘마이웨이’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신장질환으로 투병해온 요양병원에서 오랫만에 외출해 오른 무대였다. ‘마이~’를 길게 끄는 마지막 소절에서 힘에 부쳐 짧게 끊은 걸 아쉬워 하는 기색이 그의 얼굴에 잠시 스쳤다. 노래가 끝난 뒤 쏟아진 박수에 숙연함이 흘렀다. 한국 재즈의 산실이라고 일컬어지는 ‘야누스’ 40돌 축하공연이었다. 갖은 고생을 하며 야누스를 이끌어온 박성연의 마지막 야누스 공식 무대이기도 했다.

지금도 대중적이지 않은 재즈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1978년, 그는 ‘손님들 취향’이 아니라며 해고될 염려없이 맘껏 노래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야누스’를 차렸다. 당시 딸이 술집을 차리는 걸로 생각한 그의 어머니는 “술집을 하면 지옥에 가서도 화롯불을 머리에 이고 있게 될 것”이라고 심하게 반대 했다고 한다. 서울 신촌역 근처의 화실을 개조해 야누스를 문 연 박성연은 오픈 첫날 손님들은 들어오는데 테이블과 의자가 미처 도착하지 않아 허둥대는 어리숙한 사장이었다. ‘야누스’는 영문학자이자 번역가인 문일영이 골라준 이름이었다. 이곳에 강대관, 길옥윤, 김수열, 신관웅, 이동기, 이판근, 최선배 같은 1세대 재즈 뮤지션들이 모였다. 생계를 위해 호텔, 캬바레 등에서 연주를 하던 이들도 일 끝난 밤이나 주말이면 어김없이 제집처럼 돌아와 연주를 했다. 또 매달 ‘야누스 정기 연주회’를 열면서 음악인 뿐 아니라 작가들과 영화인, 패션계 사람들까지 모이는 일종의 문화공동체로 자리잡았다.

경영난 때문에 잦은 이사를 해야했던 야누스의 전성기는 90년대 중반 혜화동 시절이었다.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1994)에서 차인표가 재즈바에서 색소폰 부는 장면으로 다소 엉뚱하게 불질러진 ‘재즈’ 열풍이 야누스에도 훈풍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신기루에 가깝던 반짝 재즈 열풍은 금방 식었고, 야누스는 다시 이화여대 쪽으로, 청담동으로, 2008년 지금의 서초동으로 가난한 이삿짐을 옮겨야 했다. 1986년 야누스 멤버로 합류한 피아니스트 임인건은 제주도로 떠나기 직전까지 27년동안 한결같이 이곳에서 연주 했는데 그의 마지막 공연을 지켜본 건 함께 녹음했던 동료 한명과 손님 한명 뿐이었다고 회고한다. 무대에서 내려온 그에게 박성연은 “퇴직금”이라며 봉투를 건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가만히 서서 오만원이 들어있는 그 봉투를 한참 쳐다봤다고 한다. 임인건은 2016년 박성연 등 함께 했던 야누스 원로들, 후배들과 함께 음반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를 냈다. 23일 세상을 떠난 재즈가수 박성연과 그의 친구들이 지닌 ‘애틋함’이 야누스 50돌, 60돌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김은형 논설위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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