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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같거나 다르거나] 미움받을 용기 / 김용태

등록 2020-08-26 16:59수정 2020-08-27 02:38

정부 여당은 정책의 잘못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면 과거 정권의 탓으로 돌립니다. 집권 초기에는 그럴 수도 있지만 3년차, 4년차가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보수정권 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동문서답을 하기도 합니다. -금태섭

김용태 ㅣ 정치인

불통의 정치는 ‘한번 밀리면 끝까지 밀린다’라는 근거 없는 고집으로 눈에 빤히 보이는 시행착오나 실수를 부정하는 데 있다는 금태섭 전 의원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또한 소통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말씀에도 동의합니다. 누가 완벽할 수 있을까요? 시행착오와 실수를 비판하고 바로잡아줄 존재의 인정, 그게 정치이고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치에는 ‘한없이 선한 의도’와 ‘무오류의 집단 의지’가 판을 칩니다. 그 속에서 ‘현실에 발 디딘 경험’과 ‘소수의 비판정신’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누구라도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인정받으려 노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집단의 목표를 인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은 집단에 소속된 구성원의 책무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집단의 목표가 도그마가 되고 집단 자체가 절대시되면 그 내부에선 이견은 배척되고 일치만이 인정받습니다. 토론은 시간 낭비로, 비판은 적전 분열로 금기시됩니다. 토론을 신청하고 비판을 허용하라는 구성원은 외부의 적보다 더 심각한 공격과 배제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이럴 경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심각한 자기 회의에 빠지며 급기야는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고 고립시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저는 금 전 의원이 지난 4년 집단 내에서 겪었던 일들과 그 일들의 맥락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금 전 의원이 느꼈을 비통함은 저에게 동병상련처럼 아프게 전해져 옵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저는 종합편성채널 허용과 4대강 사업에 찬성했습니다. 종편 허용은 디지털 컨버전스의 지평을 확대하고 미디어 산업의 저변을 확대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종편이 뉴스채널화되다시피 하고 공정성 시비는 끊이질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당시 뜻있는 전문가들의 충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음을 인정합니다. 개별 종편 내에서의 공정성 확보만큼이나 전체 종편 차원에서 형평성을 맞추어야 한다는 의견 말입니다. 보수적 시각의 종편이 있다면 진보적 시각의 종편이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4대강 사업도 기후변화에 따른 물 관리의 중요성만 강조했지,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의 요구는 등한시했습니다. 한번에 4대강 본류 전체에 대해 사업을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1~2개의 강을 선택해 본류와 지류를 함께 실시하자는 요구 말입니다. 그래야 사업의 허실을 파악하여 문제점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죠. 그것도 야당 지지층을 적극 배려하여 사업 대상을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극심한 반대를 상당히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도 됩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그 무엇보다도 뼈아픕니다. 물론 저는 역사 교과서의 편향성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국정화라는 것은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집권여당은 공무원 연금 개혁과 노동시장 개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국정화 논란으로 민심은 들끓고 정국은 오리무중이 되었습니다. 사실 공무원 연금이나 노동시장 개혁은 전세계적으로도 워낙 어려운 국가 과제입니다. 이해당사자들과 끈질기게 토론하고 타협해도 모자랄 판에 국민 정서와 시대 상황에 어긋나는 또 다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제 나름대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상대방과의 타협을 주장했지만 집단 내에서 제 설 자리는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미움받을 용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정치하는 이유를 찾아 행동한 것이었지만 때론 심각한 회의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1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금 전 의원이 겪었던 수모와 설움을, 저 또한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겪었었지요. 그리고 낙선의 고배를 들고 나서 지금까지 어떤 정치를 해왔고 앞으로 어떻게 정치를 할지 생각해봅니다.

저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시장의 우월성과 민주주의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시장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끔찍한 오만이라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불완전한 인간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자의적인 통치, 독재를 막을 유일한 제도임을 믿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늘 완벽할 순 없으며 민주주의는 온갖 도전에 시달리는 게 현실입니다.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과 집단에 대해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 치명적인 오류는 수정되고 불확실한 결과는 개선될 것입니다. 그것만이 불완전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인간들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온전히 꾸려나갈 수 있는 길이라 믿습니다. 지금 우리 정치에는 집단 내외부를 떠나 일치단결하는 것만큼 비판을 통한 견제, 견제를 통한 균형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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