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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희진의 융합] 오리지널 돈가스는 없다

등록 2020-08-31 17:51수정 2020-09-03 11:25

정희진의 융합 _05
스무살 청년이 ‘정희진의 융합’을 먼저 읽고 그리다. 장태희
스무살 청년이 ‘정희진의 융합’을 먼저 읽고 그리다. 장태희

우리말과 한글은 다른 단어다. 우리말은 ‘나(우리)가 여기서 사용하는 현지어’다. 한글은 우리말의 일부일 뿐이다. 한글 전용론은 융합적 사고에서 중요한 이슈이다. 융합(融合)과 전용(專用)은 단어 자체로도 대비된다. 무엇보다 융합은 한글 전용이 전제하는 안과 밖을 구분하는 발상에 대한 문제제기다. ​

공항마다 항공기 탑승 전에 티켓과 신분증을 검사하는 두 개의 출입구가 있다. 김포공항 국내선에는 ‘한국인/韓國人/Korean’과 ‘외국인/外國人/foreigners’로 적혀 있다. 볼 때마다 흥미롭다. 두 어휘는 적절한 대응 개념이 아니다. 한쪽을 ‘외국인’으로 표기했으면, 이에 상응하는 표현은 한국인이 아니라 ‘내국인(우리)’이어야 한다.

영어권의 다른 공항에 갔을 때 ‘거주자(residents)/방문자(visitors)’로 구분하는 것을 보고 ‘마음의 평화’를 느낀 적이 있다. 이상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지구인으로서 평등하다. 지금 이 순간, 숨 쉬는 공간이 다를 뿐 어디든 이동할 자유가 있다. 내국인과 외국인보다 거주자와 방문자가 훨씬 덜 위압적이다.

거주자와 방문자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말이다. 도착한 장소는 특정 ‘국민’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현장이다. 현지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로 소통하면 된다. 제국주의 침략으로 식민 지배를 겪은 나라들은 기존의 자국 언어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을 공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용자의 상황에 따라 같은 언어도 영국인에겐 “모국어”, 한국 사회에서는 “영어(英語)”, 영어권에서는 “잉글리시”로 불린다.

그런 의미에서 한글(Hangeul)도 전 세계 수많은 언어 중 하나의 지칭이지, 한글 자체가 우리말/글(이하 우리말)은 아니다. 아마도 외국인 유학생 유치 때문이겠지만, 최근 몇몇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대신 ‘한국어문학과’라고 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말과 한글은 다른 단어다. 우리말은 ‘나(우리)가 여기서 사용하는 현지어’다. 한글은 우리말의 일부일 뿐이다.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자주 하는 말, “한국어를 잘하시네요”와 “우리말을 잘하시네요”는 한글과 우리말의 차이를 보여준다. “한국어를 잘하시네요”가 맞다. ‘우리말’에서 누가 우리인가? ‘우리’는 이미 상대방을 배제한 말이다. 또한, 칭찬일지라도 타인의 언어 능력을 평가하는 표현도 실례에 속한다.

■ 한글 전용에서 우리말 전용으로

2005년 “초등학교 3~6학년 교과서에 한자 병기”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당시 국어 교사를 대상으로 강의를 했는데, 나는 한자 병기를 자연스럽게 생각했기에 우리말에서의 한자의 위치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그날 강의는 악몽이었다. ‘마초 남성’을 대상으로 여성학 강의를 해도 ‘강사 예우’라는 문화가 있어서인지 수강생들이 졸거나 은연중에 반감을 드러내기는 해도, 현장에서 나를 “엘리트주의, 한문 숭배자”라고 비난한 이들은 없었다. 한자 병기에 그 정도로 반발이 큰지 예상치 못했다.

국어 교사들의 염려는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를 병기하면 학생들의 학습량만 늘어나고, 한문 과외가 극성을 부릴 것이라는 ‘참교육’ 논리였다. 그들의 의견에 100퍼센트 동의한다. 다만, 나의 강의 요지는 우리말 쓰기와 읽기 그리고 지식 생산에서 한자의 불가피성에 관한 것이었다. 한자는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베트남어의 근간을 이루지만 한자 자체가 각국의 언어는 아니다. 한자를 괄호 안에 병기한다고 해서 한글이 손상되지 않는다.

한글 전용론은 우리말을 적을 때 한자나 영문을 쓰지 않고 한글만 쓰자는 주장이다. 한문 혼용론과 더불어 논쟁의 역사는 길고, 싸움 나기 좋은 주제다. 한글 전용론(專用論)이라는 단어 자체가 “한글”+“전용론”으로, 한글 전용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매일 인터넷, 버스, 하이브리드, 유비쿼터스, 골프 등 ‘남의 나라’ 말을 사용한다. 영어보다 한자가 더 ‘골치’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한자에 노출되어 있다. 하자(瑕疵), 외설(猥褻), 폄훼(貶毁), 구제역(口蹄疫) 파동 같은 단어는 말할 것도 없고, 들어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위법성 조각 사유(違法性 阻却 事由)’ 같은 단어가 수시로 방송된다. 오늘 뉴스 자막에서도 ‘비말(飛沫)’은 여전했다.

침방울처럼, 비말을 처음부터 한글로 사용하면 문제가 없지만 적절한 한글 표현이 없어서 발음만 한글을 쓰고 한자를 병기하지 않을 경우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믿기 힘들겠지만, 예전에 시사 월간지 <말>을 ‘경마 잡지’로 아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음란’과 ‘외설’의 관계도 흥미롭다. 외설은 “맥락에서 벗어난”이라는 뜻이다. 음란과는 의미가 다르지만, 성적 표현물에 이야기(맥락)는 없고 ‘익숙한 장면’만 반복될 때 외설물이라고 한다. 이처럼 음란과 외설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한편 여성주의가 반대하는 것은 폭력 재현물이지 음란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음란, 외설, 폭력은 모두 다른 말이다.

요지는 어떤 언어도 한 가지 요소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얘기다. 말은 계속 만들어진다는 의미에서 사용 중 ‘오염’은 필연적이고, ‘외래어’ 자체가 외설적이다(=맥락적이지 않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창시했다는 한글은 우리말이 아니라 우리말의 일부일 뿐이다. 중국어는 한자를 개조해서 쓰고 있고(简体), 일본어는 5개 이질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히라가나, 가타카나, 장음(長音), 경어, 한자. 표현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가나(かな)는 한자의 일부를 따온 표음 문자여서, 일본어는 일본식 한자 없이는 성립 불가능하다.

■ 순수한 언어는 없어 

나는 이 글에서 한글 전용론을 비판하거나 논쟁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한글과 우리말을 구별하자는 것이다. 사유는 단어로 이루어진다. 근대 이후 제국주의 침략으로 비서구 사회는 정치·경제뿐 아니라 문화의 식민지였다. 근대화를 주도한 서구가 언어와 사유를 독점적으로 생산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일본과 서구의 이중 침략으로 인해 오랫동안 중역(重譯)의 시대를 살았다.

양식, 양복, ‘양공주’까지 양(洋)자가 들어가는 단어는 모두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한반도에 들어온 말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단어들과 문장 구조는 일제(日帝) 산물, 일제(日製)다. ‘개인, 자유, 권리’ 같은 수많은 근대적 표현은, 일본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일본 스스로가 고안(번역)해낸 일본어이다.

한글 전용론은 융합적 사고에서 중요한 이슈이다. 융합(融合)과 전용(專用)은 단어 자체로도 대비된다. 무엇보다 융합은 한글 전용이 전제하는 안과 밖을 구분하는 발상에 대한 문제제기다. 서울· 경기지방의 사투리가 표준말이고 그 외는 방언이라는데, 이것은 권력의 임의성 즉 사회적 산물이지 하늘의 이치가 아니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스스로 창조주가 되는 것이다. 조물주 콤플렉스가 “한글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고라면, 메시아 콤플렉스는 “그것을 지키겠다”는 다짐이다.

영어와 한자를 제외한 순수한 우리말은 강조하면서, 비티에스(BTS)의 노래로 한글이 퍼져나가는 것은 반가운 일인가. 순수와 기원, 우리 것, 전통을 강조하는 이들은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피해 의식은 융합적 사고인 새로움에 대한 수용성, 용기, 호기심을 배척한다.

백욱인의 <번안 사회>에는 ‘돈가스(とんカツ, 豚カツ)’를 추적하는 장면이 나온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슈니첼, 영국과 미국의 커틀릿, 일본의 가쓰레쓰, 한국의 돈가스. 국정교과서 세대인 내게 돈가스는 ‘포크커틀릿(pork cutlet)’이었다. 중고 시절, 이 단어는 단골 시험 문제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각 사회에서 돈가스는 소스, 조리법, 먹는 방법, 대중화 정도가 모두 다른 현지 음식일 뿐이다.

누가 더 먼저인가라는 기원을 찾는 사고방식에서 융합은 불가능하다. 서구 중심의 직선적 시간관에 따라 지식의 가치가 배열되기 때문이다. 대개 비하하는 의미에서 특정 단어에 대해 “정체불명, 국적 불명”이라고 하는데, 정체불명은 모든 언어(문화)의 속성이다.

사족 ― 이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어려운 점은 근본적으로는 나의 글쓰기 능력이지만, 융합의 의미를 표현하는 우리말이 사실은 ‘융합’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통섭(通攝)이 가장 근접한 단어지만, 기존의 통섭(統攝)이 워낙 위세를 떨친데다 동음이라 사용할 수 없었다. 통섭(通攝) 대신 융합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내 표현과 사고에도 적지 않은 제약이 있다.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문학박사. 글쓰기와 책읽기를 좋아한다. ‘논문, 비평, 수필, 편지, 칼럼’ 등 글의 장르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학 연구자로서 공부의 목적은, 기존의 논쟁 구도와 전선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여성주의와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를 재해석하는 데 관심이 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tobrazi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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