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 지식디자인연구소장
통념 하나. 어차피 다음 대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미래통합당을 찍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갤럽의 2020년 6월 넷째 주(23~25일) 여론조사에서 통합당에 대한 호감도는 18%, 비호감도는 69%였다. 이 데이터는 ‘야당 복’의 실체를 말해준다. ‘야당에 유력한 후보가 없다.’ 야권의 1등 주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2020년 8월 둘째 주(11~13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총장은 9%를 받아 안철수 전 의원(3%), 홍준표 의원(2%)을 압도했다. 하지만 2012년의 안풍에 비하면 미미하다. 저러다가 출마 안 하면 다른 주자들의 성장을 갉아먹는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야권의 잠재적 후보 중에 누구도 와우 팩터(wow factor), 즉 사람을 흥분시키거나 감탄하게 하는 요소를 가진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고만고만하다.
‘정권교체는 통상 10년 주기로 이뤄진다.’ 김대중 정부도 막판에 반대 정서가 극심했으나 노무현 정부로 이어졌고, 이명박 정부도 반엠비(MB) 정서가 대세를 이뤘으나 박근혜 정부가 물려받았다. 정권을 맡겼으면 다소 부족해도 10년의 시간을 주는 게 심리적 사이클에도 부합한다.
과연 그럴까? 선거 흐름을 말해주는 지표가 있다. 현 정권의 유지를 원하는지 아니면 정권에 대한 견제·교체를 원하는지에 대한 여론 추이다. 지난 총선 이틀 전의 조사에서 정권안정론 49%, 정권견제론 39%였다. 이는 총선 결과로 표출됐다. 지난 8월 둘째 주의 갤럽조사에서 정권안정론 41%, 정권교체론 45%였다. 이 흐름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총선 끝난 지 넉 달 만에, 아직 대선이 먼데 벌써 정권교체를 떠올릴 만큼 민심이반이 심각하다.
야당 복은 누릴 만큼 누렸다. 통합당이 싫어서 미운 민주당을 찍는 전략적 투표, 더 이상은 어렵다. 소수당으로서 고군분투한 민주당에 대한 보상,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통합당에 대한 응징은 총선으로 완성됐다. 이제 민주당은 통합당과의 비교에 의한 상대적 가치가 아니라 성과 여부에 대한 절대적 가치에 의해 평가될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에 대해선 야박해지고, 반통합당 정서는 옅어질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힘자랑만 할 뿐 야당을 설득하는 실력이나, 대중적 동의를 얻는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후보 우위 구도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전두환-노태우,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등 3번의 정권 재창출 사례를 보면 법칙 같은 것이 발견된다. 대선 후보들은 현 정권과 ‘다른’ 후보였다. 차별화를 통해 회고적 선거가 아니라 전망적 선거로 만들었다. 그들은 또 ‘같은’ 편의 후보이기도 했다. 차별화에도 불구하고 현 대통령의 지지층이 그를 수용했다. 이낙연 대표는 다름의 과제를 풀어야 하고, 이재명 지사는 수용의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경쟁 과정을 통해 지지층의 확대를 이뤄낼 수도 있고, 지지층 분열로 귀결될 수도 있다.
총선 후의 지지율 하락세를 우발적 사건에 의한 일시적 침체로 생각하고, 수동적으로 대응한다면 이탈 정서는 강화될 것이다. 현재의 어젠다세팅(의제설정)·태도·인물·전략을 고수하면 촛불연합은 약화되고, 반대연합은 커질 것이다. 코로나 등으로 인한 깃발효과(rally around the flag)로 지지율이 반등하더라도 기저 흐름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 지금 안 바꾸면 뒤에 정권이 바뀐다! 설마라고? 그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다.
2008년 미국 민주당은 대선, 상원의원 선거, 하원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다. 진보 전략가들은 이 선거에서 형성된 오바마 연합을 민주당 다수파 시대를 열고 진보의 장기집권을 예고한다며 환호했다. 그러나 불과 2년 뒤 선거에서 참패했다. 민주당은 상·하원을 잃었다. 하원에선 무려 63석을 잃어 소수당이 됐다. 이처럼 승패는 한순간에 바뀐다. 민주당의 총선 압승이 대선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총선 승리를 동력으로 삼아 새로운 비전과 게임플랜을 마련하고, 촛불연합을 잇는 대중적 개혁연합, 즉 수적 다수를 넘어 사회적 다수파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여야의 적대적 공존구도에 기댄 정치적 동원에 중독된 듯하다. 세상을 바꿀 새로운 거버넌스 기획도 없다. 그 결과 촛불연합이 해체되고 있다. 방치하면 패배뿐이다. 확 달라져야 한다. 전망 하나. 바꾸면 안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