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미국 하원의원 선거 결과. 루스벨트의 민주당이 97석을 늘리며 435석 중 313석을 휩쓸어 제1당에 올라섰다. 오른쪽은 2020년 4월 한국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이 지역구(163석)와 비례를 합쳐 300석 중 180석을 차지하는 전례 없는 승리를 거뒀다. 그래픽 이상호 기자 silver35@hani.co.kr
루스벨트는 민주당이 훨씬 민주주의적인 정당, 일반 당원의 참여에 기반한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점에서 루스벨트-민주당 관계는 노무현과 새천년민주당의 관계와 비슷했다. 노 대통령이 끝내 민주당과 타협하지 못하고 새로운 정당(열린우리당)을 만드는 데 동참했다면, 루스벨트는 민주당 안에서 싸우는 걸 선택했다는 게 달랐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개혁은 미국 사회를 바꿨을 뿐 아니라, 소수파였던 민주당의 토대를 바꿨다. 대공황 직후인 1930년 중간선거부터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처음 당선된 32년 선거, 34년 중간선거, 재선에 성공한 36년 대선 및 상·하원 선거까지, 민주당은 매번 수십석씩 의석을 늘리며 이후 수십년간 상하 양원을 지배했다. 뉴딜의 혜택을 받은 북부 흑인과 노동자, 이민자, 남부 백인, 여성·젊은층이 만들어낸 ‘뉴딜 연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세기 가까운 세월을 뛰어넘어 루스벨트 민주당에서 한국의 더불어민주당을 떠올리는 건, 몇 가지 점에서 정치적 상황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첫째, 미국 민주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정당 재편성, 곧 지지층의 확장과 연대를 통해 정치적 소수파에서 다수파로 탈바꿈했다는 가설을 공유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1861년 남북전쟁 이후 70년간 ‘만년 야당’이다가 루스벨트 시대를 거치며 행정부와 입법부 모두에서 다수파로 올라섰다. 결정적인 분기점이 1932년과 36년의 대통령선거 및 상·하원 선거였다. 특히 1932년 선거에선 상원 12석, 하원에서 무려 97석을 늘리며 안정적인 의회 다수파의 자리에 올랐다.
한국도 2017년 대선과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게 극적인 정당 재편성의 사례일 수 있다고 정치학자들은 말한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학)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전체 투표자의 5분의 1에서 3분의 1에 이르는 유권자가 지지 정당을 바꾼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18살 유권자의 투표 참여와 과거보다 높아진 투표율이 2017년과 2020년 선거를 지지 유권자층의 재편성이 일어난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로 만들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물론 어떤 선거가 ‘중대 선거’인지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분명히 알 수 있다. 루스벨트가 백악관에 입성하고 민주당이 상·하원에서 대약진을 한 1932년 선거가 향후 미국 정치를 가를 분기점이었음을, 그 당시엔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두번째로, 미국의 ‘뉴딜 연합’과 같은 다양한 계층·집단의 연대를 한국에선 2016~17년 광장의 촛불 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루스벨트 민주당은 사회·경제 개혁을 통해 ‘북부 공화당 대 남부 민주당’이라는 지역대결 구도를 깨고 전국적 차원의 ‘뉴딜 연합’을 만들었다. 한국에선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수도권에서 민주당이 약진하면서 영호남 대결 구도가 약화한 게 눈에 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선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을 안철수 대표에게 내주고도 민주당은 제1당에 올랐다. 지역 변수보다 사회·정치 쟁점과 세대 변수가 훨씬 중요해졌음을 시사한다.
2016년 가을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촛불 연합’ 또는 ‘탄핵 연합’이 1930년대 미국의 뉴딜 연합과 흡사하다고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평가했다. 이 교수는 “뉴딜 연합과 탄핵 연합(또는 촛불 연합)은 무엇보다 그 전과 후에 기존 정당의 지지자를 다른 정당으로 대거 이탈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탄핵 연합은 뉴딜 연합만큼 사회·경제적 연합은 아니지만, 그래도 촛불의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경제 개혁 요구가 분출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뉴딜 연합은 루스벨트가 10여년간 그래도 일관성 있게 이끌었다면, 탄핵 연합에는 그러한 리더십이나 디자이너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뉴딜 연합은 개혁정책으로 경제·사회적 혜택을 받은 집단과 계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했기에 공고했고 또 오래갈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촛불 연합’은 폭이 넓긴 해도 ‘뉴딜 연합’만큼 견고하진 못하다. 박근혜 탄핵에 찬성했던 중도보수 세력은 이미 강력한 반대 세력으로 돌아섰고,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촛불의 성과와 문재인 정부 평가를 놓고 첨예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요한 건 대공황 직후의 뉴딜이 그랬듯이, 코로나 위기 속에서 벼랑 끝에 내몰린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 청년실업자, 소외계층을 사회안전망 안으로 끌어들여 삶을 안정시키는 일이다. 코로나 경제위기는 전례가 없고 파장을 짐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1929년의 세계 대공황과 닮았다. 지금 세계가 코로나라는 팬데믹을 마주한 건 우연이겠지만, 극복의 방향은 대공황 시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위기 극복 프로젝트를 ‘한국판 뉴딜’이라 명명한 건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을 전후해 파시즘과 전체주의가 대중의 열광 속에 전세계를 휩쓸었다. 루스벨트는 “내가 선거로 뽑히는 마지막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고 말할 정도였다. 배타적 정책과 극단적 이념에 치우진 지금의 세계와 비슷하다. 루스벨트는 대외적으론 자유주의에 기반한 협력을, 국내적으론 사회적 약자를 정부가 포용하고 이를 위한 엄청난 재정 투입을 감수했다. ‘한국판 뉴딜’도 이런 지향을 갖고 있는 걸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루스벨트 시대와 같은 ‘뉴딜 연합’으로 이어지려면, 사회적 약자를 분명하게 사회안전망 안으로 끌어들이고 청년과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2016~17년에 이뤄진 ‘촛불 연합’의 지속 여부는 여야 간 정치적 다툼보다, 이런 사회·경제 정책의 실질 성과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또 하나 주목할 건,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미국 민주당의 잇단 선거 승리엔 ‘리버럴(진보) 정당’으로의 변신도 작용했지만, 루스벨트 리더십이 우산처럼 민주당을 지탱해준 측면이 컸다. 1930년대에 루스벨트와 민주당의 관계가 꼭 좋은 건 아니었다. 남부 출신의 보수적 의원들은 공공연히 뉴딜 정책에 반대했다. 흑인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내용의 공정노동기준법은 남부 민주당 의원들의 반발로 대폭 수정된 뒤에야 의회를 통과했다. 보수적 대법원을 바꾸려는 대법원 개혁 시도는 당내 보수파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루스벨트는 민주당이 훨씬 민주주의적인 정당, 일반 당원의 참여에 기반한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점에서 루스벨트-민주당 관계는 노무현과 새천년민주당의 관계와 비슷했다. 노 대통령이 끝내 민주당과 타협하지 못하고 새로운 정당(열린우리당)을 만드는 데 동참했다면, 루스벨트는 민주당 안에서 싸우는 걸 선택했다는 게 달랐다.
재선에 성공한 루스벨트는 민주당 보수파 의원들과 싸우기로 결심했다. 1938년 중간선거의 민주당 경선에 깊숙이 개입했다. 열차를 타고 보수파 의원들의 지역구를 돌며, 진보파 인사를 민주당 후보로 뽑아달라고 호소했다. “루스벨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후보 몇몇을 바꾸는 게 아니라 정당 시스템 자체를 완전히 새로 짜는 것이었다”고 미국 정치학자 숀 새비지는 ‘루스벨트와 민주당’(Franklin Roosevelt and the Democratic National Committee, 1991)에서 밝혔다. 노무현이 그랬던 것처럼, 루스벨트의 시도는 실패했다. 루스벨트가 반대했던 10명의 민주당 보수파 의원 중 한명을 제외한 전원이 경선을 통과했고, 중간선거에서 승리해 의회로 복귀했다. 루스벨트 개혁 중 가장 아프고 쓰라린 패배였다.
2020년 4월15일 밤, 더불어민주당 선거상황실에 모인 당직자들이 민주당 압승으로 흐르는 총선 개표 결과를 티브이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2020년 현재, 한국의 리버럴 정당(더불어민주당)은 과거에 비해 훨씬 대통령에게 협조적이다. 노무현의 당 개혁 시도는 실패했지만, 그 경험이 청와대와 민주당 양쪽에 반면교사로 작용하는 탓이 크다. 대통령과 집권당의 일체감이 높아진 건 바람직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대통령이 직접 주요 정책에 대한 국민의 강한 지지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루스벨트 시대 들어서 정책 수립과 결정, 집행을 책임지는 권력의 심장은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옮겨졌다. 루스벨트는 핵심 현안을 직접 국민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다. 선거 때마다 민주당에 강력한 우산을 씌워준 건 결국 대통령의 리더십이었다.
지난 선거의 압승이 미래 선거의 승리를 보장하진 않는다. 2007년 12월 대선을 전후해 한나라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은 세번 연속(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전국 선거를 이겼다. 특히 2008년 18대 총선에선 서울의 48개 선거구 중 40개 선거구를 석권하는 역대급 승리를 거뒀다. ‘일본 자민당처럼 보수 장기집권 시대가 열렸다’고 언론에선 평가했다. 그때 이명박 대통령 측근이던 정두언 국회의원은 “지방이 아닌 수도권, 중산층, 이념적 중도, 이 ‘3중’을 잡지 않으면 보수정당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예언이 됐다. 정 의원이 말했던 ‘3중’을 잡는 데 보수정당은 실패했다. 지역과 세대의 변화는 오히려 진보 색깔을 뚜렷이 한 더불어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박찬수 ㅣ 선임논설위원. <한겨레신문>에서 정치부와 사회부·국제부 기자로 일했다. 국회와 청와대를 취재하며 ‘정치란 결국 권력 행사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고, 그 점에서 어떻게 하면 권력을 제대로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작동 방식을 비교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과 1986년 태동한 민족해방(NL) 사조를 다룬 <엔엘(NL) 현대사>(2017년)를 펴냈다. pc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