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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자영업 영업금지 정당한가요 / 김수헌

등록 2020-09-13 16:18수정 2020-09-14 02:40

김수헌 | 경제팀장

“집 팔고 빚내고 차린 내 소중한 가게인데 국가가 한달째 가게 문을 못 열게 하고 있어서 매일 울고만 있습니다. 제가 울면 아이들도 같이 울어 이제는 집에서 울지도 못해요. 사모님의 배려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는 더 이상 부탁드릴 염치도 없습니다. 밀린 월세는 명도소송 당할까 두려워 하루하루가 불안합니다. 장사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관리비도 월 100만원 이상 쌓여가고 있어요. 기다리실 텐데 이달도 아직 월세 입금을 못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준3단계’가 시행되는 바람에 가게 문을 닫게 된 한 노래연습장 업주가 임대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수도권 노래연습장업 비상대책위원회가 스마트폰 화면을 갈무리해 한 언론에 제공한 게 기사화됐다. 정부의 방역 강화 조처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의 딱한 처지가 절절하게 느껴진다.

정부의 ‘집합금지’ 행정명령에 따라 피시(PC)방·노래연습장 같은 12개 업종에 대한 영업금지, 밤 9시 이후 음식점·술집 등의 영업제한이 이뤄지면서 해당 업주와 종사자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영업금지·제한은 방역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퍼질 때마다 감염 예방을 명분으로 정당한 피해보상 없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반복되는 게 법치주의 국가에서 타당한 것일까.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영업금지·제한 대상이 된 자영업자들에게 150만~2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지원 금액이 피해 규모보다 터무니없이 적을 뿐 아니라 정부의 행정명령에 따른 재산권 침해에 대한 보상 성격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재산권 침해에 대한 보상이라면 특정 업종(유흥업소, 콜라텍)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할 이유가 없다. 이 문제는 가게 문을 열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손님이 줄어 어려움에 처했으니 정부가 예산으로 ‘구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안이다. 비록 공익을 위한 것이지만 정부가 영업을 금지해 개인 재산에 손실을 입힌 것이므로 이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하는 문제다.

헌법은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23조3항)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거리로 나선 피해 당사자들의 호소 이외에는 사회적 문제 제기의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코로나19 방역이라는 ‘서슬 퍼런 공익’에 밀려 개인의 기본권 침해가 무시로 일어나도 제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부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적법 절차이고, 법적으로 보상 의무도 없다고 한다. 한데 이 법 49조1항2호는 단지 “흥행, 집회, 제례 또는 그 밖의 여러 사람의 집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게 돼 있을 뿐이다. 정부가 이 조항을 근거로 명시적으로 언급돼 있지 않은 특정 업종에 대한 영업금지 명령을 내리는 것은 기본권 제한 입법에 요구되는 ‘법률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될 여지가 있다. 영업금지 업종 선정 기준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영업금지 근거가 애매하다 보니 49조1항2호에 따른 조처로 인한 손실 보상 규정도 이 법에 담겨 있지 않다. 짐작하건대 입법 과정에서 ‘흥행, 집회, 제례 금지’가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영업금지 조처로까지 이어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정부가 합당한 비용 지급 없이 특정 집단의 희생을 통해 공공의 목적을 달성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같은 이유로, 피해보상이 선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전 국민에게 똑같은 돈을 나눠주자는 주장도 수긍하기 어렵다. 방역을 위해 영업금지가 필요하다면 헌법 정신에 맞춰 감염병예방법에 영업금지 근거를 명확히 하고 손실 보상 규정을 넣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히 이런 내용을 담은 개정법안이 여러 건 발의돼 있다.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기대한다.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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