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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혐중’을 넘어: 균형 잡힌 중국관을 위해서

등록 2020-09-15 18:06수정 2020-09-16 02:40

중국의 개발 방식은 세계에 희망은 아니지만 비난만 받아야 할 것도 아니다. 그저 세계 전체와 함께 고통의 길을 걷는 것이다. 사드 배치와 같은 미국식 ‘중국 견제’는 중국 인민의 고통을 덜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증폭한다. 미국 내지 중국 제국을 편드는 일 없이 중국 현실을 냉정하게 지켜보면서 개발주의나 제국적 지배의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닌가?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박노자 ㅣ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내가 한국에 처음 간 것은 1991년이었다. 내가 다녔던 고려대학교의 총학생회장은 그때 최홍재였다. 나중에 전향해서, 현재 뉴라이트로 활동하는, 바로 그 최홍재였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최홍재의 총학생회 지도부가 발행하는 국제 정세 관련 자료를 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웠다. 나는 그들의 좌파민족주의적 이념을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걸프 전쟁을 계기로 해서 세계적 일극 체제를 지향했던 ‘미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은 상당히 읽을 만했다. 붕괴를 향해 가고 있었던, 그 과정에서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을 잃었던 말기의 소련과는, ‘반미자주’라는 내용의 커다란 펼침막이 학생회관에 걸려 있었던 고려대가 그야말로 대조를 이루었던 것이다.

운동권도 머지않아 덩달아 붕괴됐지만,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은 그 뒤에도 지속적으로 남아 있었다. 2002년 효순,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이 촉발한 촛불 시위들 속에서 탄생한 노무현 정권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자 그 지지층이 반토막 났다는 것만 봐도 미국의 침공에 공범 행위를 감행하는 것이 한국 정치인으로서 당시만 해도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 수 있다. 2008년 촛불 사태도 미국에 대한 ‘굴욕 외교’로 인해서 그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것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를 거쳐서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과거와 같은 반감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2017년 8월에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여론이 71%나 됐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처음에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2000년대만 해도 엄청나게 격렬한 시위들이 터졌을 법한 사안이며, 비판자들의 눈에는 ‘친미 굴종’으로 보였을 만한 정책인데, 여론이 왜 이 결정을 이렇게도 순순히 받아들이는가 싶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답은 명확하다. ‘반미’를 망각하게끔 만든 ‘혐중’의 시대가 한반도에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촛불 행진들이 벌어졌던 2008년만 해도, 한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은 각각 약 43%로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2017년에 이르러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에 의하면 2017년에는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호감도는 비호감 61%, 호감 34%였다. 현재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30%에도 못 미칠 정도로 떨어졌지만, 기본적인 패턴은 대체로 동일하다. 비호감은 호감보다 거의 2배나 높은 것이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 전체 무역액의 26.5%를 차지하고 약 72조원의 무역흑자를 안겨주는 이웃이자 파트너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꼭 자연발생적인 것만은 아니다. ‘혐중’의 진원지는 유커(중국 관광객)로 돈벌이하는 상인이나 중국 시장을 놓치면 안 되는 수출 업체 회사원들이 아닌, 상당수가 도미 유학의 유경험자인 여론 주도층이다. 그러면 이들 중국관의 기본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

먼저 한가지 단서를 달겠다. 나는 중국을 이상화 내지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1980년대 운동권이 보였던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비현실적인 미화도 아니고, 최홍재처럼 전향해서 극우파가 된 운동권 출신의 뉴라이트들이 내세우는 구미권 ‘자본주의 문명’의 이상화된 모습도 더더욱 아니다. 우리에게 운명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중국과 같은 이웃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부터 필요하고, 그 이해를 기반으로 해서 성립된 균형 잡힌 중국관이 필요하다.

사실 이미 1980년대에도 그랬듯이, 지금 중국 ‘사회주의’는 그저 ‘명분’에 불과하다. 중국은 관료 자본주의 국가이며 압축적 성장을 추구하는 개발주의 국가다. 거기에다가 오늘날 중국의 국경은 소련의 압력으로 독립을 쟁취한 몽골만 빼면 청나라의 국경 거의 그대로다. 즉, 중국은 태생적으로 ‘제국’이다. 이 제국의 판도에 들어오게 된 많은 변강 소수민족은 자의로 중국 공민이 된 것이 전혀 아니다. 그리고 과거의 엘리트들을 제거한 혁명을 거친 사회인 중국에서는, 혁명 주도 세력의 후계자들이 ‘당’의 형태로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대한 철저한 지배(‘영도’)를 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 기원은 좌파적인) 권위주의 사회인 셈이다. 개발주의, 제국, 그리고 권위주의…. 누가 봐도 이러한 조합은 당연히 수많은 폐단을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은 환경 파괴나 일부 소수민족에 대한 강압적인 지배부터 노동 착취, 민주 노조를 조직하려고 시도하는 운동가들에 대한 탄압까지 ‘중국의 문제’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렇다면 ‘혐중’은 정당한가? 절대 아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문제 중의 어느 하나도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 착취와 민주 노조의 부재? 그걸로 돈을 버는 것은 우선적으로 한국 기업을 포함한 외국 투자 기업들이다. 최근에야 퇴조를 보이긴 하지만, 2013년까지만 해도 한국 기업들의 중국 투자는 아세안 전체 투자보다 더 많았다. 중국의 공해 문제를 연구하는 나의 동료 연구자의 분석을 보면 베이징과 같은 도시의 대단히 높은 대기 오염도는 주민들의 기대 수명을 3년씩이나 줄일 정도로 건강에 치명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열악한 조건에서 생산되는 저가 제품들은 여태까지 세계 주요 기업들을 살찌우면서 신자유주의적인 실질임금 동결, 즉 선진국에서 인건비 절감을 가능하게 했다. 1970년대부터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은 미국 노동자들은, 중국산 저가 상품을 소비하면서 버텨낼 수 있는 것이다. 변강 소수자나 홍콩 같은 서방과의 중계무역 중심지에 대한 억압은, ‘제국’ 중국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 열강 사이의 역학관계 문제이기도 하다. 신장에 대해 1930~40년대 소련은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티베트 무장 독립운동을 1972년까지 지속적으로 미국이 지원해왔다. 중국도 제국이지만 중국과 경쟁 내지 협력하는 다른 대국들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당 메커니즘을 통해 인재들을 발굴, 배치함으로써 기층민 출신들에게도 일정한 ‘신분 상승의 기회’를 주는 중국식 권위주의는 과연 민중을 ‘억압’만 하는 것인가?

중국의 개발 방식은 세계에 희망은 아니지만 비난만 받아야 할 것도 아니다. 그저 세계 전체와 함께 고통의 길을 걷는 것이다. 사드 배치와 같은 미국식 ‘중국 견제’는 중국 인민의 고통을 덜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증폭한다. 미국 내지 중국 제국을 편드는 일 없이 중국 현실을 냉정하게 지켜보면서 개발주의나 제국적 지배의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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