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이재용은 2015년 7월11일 미국에서 워런 버핏을 직접 만나 (삼성생명 지주회사가 보유한 사업자회사 지분의) 매각 방안을 논의하고 …”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 합병 사건의 공소장 중 일부다. 베일에 가려져 온 삼성 경영권 승계 비밀작전의 마지막 퍼즐이 풀리는 순간이다.
삼성 승계 논란은 이건희 회장이 1994년 아들에게 61억원을 증여한 것을 시작으로 30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 과정은 매우 복잡하지만, 핵심은 하나다. “이재용이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를 확실히 지배할 수 있는 방법 찾기.” 이 부회장의 전자 지분은 0.7%에 그친다.
삼성의 해법은 이재용→삼성물산→생명→전자로 이어지는 소유지배구조 구축이었다. 1996년 이 부회장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에 인수해 지분 31%를 확보하고, 직후 에버랜드가 생명 지분 19%를 인수했다. 제일모직(에버랜드와 합병)이 2015년 물산과 합친 것도 물산이 가진 전자 지분 5% 때문이었다.
그러나 삼성생명이 가진 전자 지분(8.8%)의 처리는 계속 수수께끼였다. 생명이 고객 돈으로 산 전자 주식으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금산분리’ 원칙에 어긋나, 이재용 체제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혀왔다. 2017년 3월 뇌물공여사건 수사 결과에 궁금증을 풀어줄 중요한 단서가 등장했다.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로 전환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 이 부회장은 2016년 2월1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 부탁했다.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은 ‘삼성 봐주기’ 논란을 우려한 금융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하지만 삼성이 (생명이 보유한) 전자 주식의 처리에 착수했음이 처음으로 드러나 큰 관심을 모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여전히 베일 속에 있었다.
이 부회장은 버핏과 은밀히 만나 그 방안을 협의했다. 삼성생명을 지주회사(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 주식 보유)와 사업자회사(전자 주식 보유)로 나눈 뒤, 지주회사가 가진 자회사 지분을 버핏에게 팔되, 자회사가 전자 주식을 7~10년 보유하며 의결권을 우호적으로 행사하는 내용이었다.
삼성은 “검토단계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직접 버핏과 협상했고, 금융위에 금융지주사 전환을 요청한 것은 계획이 추진됐음을 보여준다. 또 삼성은 “지엽말단적인 일”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불법 합병 등과 관련해 직접 보고받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곽정수 논설위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