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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자본주의 만세 / 조문영

등록 2020-09-23 15:13수정 2020-09-24 02:10

조문영 ㅣ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한세기 전에 콜롬비아의 농민들은 돈에 세례를 주는 은밀한 의식을 행했다. 지주에게 땅을 뺏기고 저임금 노동으로 연명하던 이들은 갓난아기가 신부 앞에서 세례를 받을 때 1페소짜리 지폐를 몰래 움켜쥐고 있었다. 아기를 빙자해 세례를 받은 신비로운 지폐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더 많은 지폐를 만들어내고, 종국에 더 많은 지폐를 불러들인다는 믿음에서였다. 인류학자 마이클 타우시그는 돈이 살아서 움직인다는 생각이 비서구 사회의 기이한 믿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돈이 돈을 낳기 때문에 암퇘지 한마리를 죽이는 것이 수천마리 자손을 잃는 것과 같다고 젊은 상인에게 조언했고, 카를 마르크스는 돈이나 다른 상품에 생명을 불어넣으면서 노동과 토지에 대한 착취를 숨기는 물신숭배를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보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라 불리는 한국의 주식투자 열풍 역시 돈이 돈을 낳는다는 자본주의 ‘주술’의 역사를 이어 쓰고 있다. 개인투자 자금의 증시 유입이 고공행진 중이고, 20~30대가 주요 시중은행에서 신용대출로 빌린 돈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다섯배나 증가했다(9월20일 <서울경제>). 17세기 네덜란드인들이 소유할 생각이 전혀 없는 튤립 알뿌리를 대상으로 선물거래 붐을 일으켰듯, 기업의 실적을 염두에 두지 않는 단타 매매가 기승을 부린다. 19세기 영국인들이 제 재산보다 더 많은 금액을 들여 철도 주식을 사들였듯, ‘빚투’도 마다하지 않는 투자자들은 3년 전 암호화폐 열풍 때처럼 “가즈아”를 외치고 있다.

물론 차이점도 눈에 띈다. 최근에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수령자를 인터뷰하면서 놀란 것은 상당수 청년이 주식투자를 라이프스타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점이었다. 실물경제에서 더 이상의 축적을 기대하기 어려운 금융자본주의 세상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은 임금노동을 부의 유일한 원천으로 생각하지도, 주식투자를 인생을 내건 무모한 도박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세뱃돈으로 받은 돈을 모아 주식 초기자금을 마련하고, 시중은행보다 다소 높은 이자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꾸준하게” 투자한다며 즐겨 찾는 유튜브 ‘학습’ 채널을 소개해줬다. 온라인 카페에서 본 주식투자 앱을 깔아서 “소소하게” 소액투자를 한다며 인스타 맛집을 소개하듯 나한테 앱을 추천하기도 했다.

그래도 ‘영끌’ ‘영털’이란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일상화된 투자에도 영혼의 품이 많이 들긴 하나 보다. 인기 있는 유튜브 채널에는 영혼을 다독이는 감사와 격려의 댓글이 차고 넘친다. 투자 비법을 전수하는 젊은 ‘고수’에게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산 당신”이라며 덕담을 아끼지 않는다. 콘텐츠가 참 좋다며, 내공이 느껴진다며, 값진 말씀 감사하다며, 조급해하지 말자며 상대를 칭찬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착한’ 커뮤니티를 최근의 날 선 한국 사회에서 본 적이 있던가.

하지만 21세기의 투자자 커뮤니티가 영혼과 대면하는 방식은 100년 전 콜롬비아 농민의 태도와 꽤 차이가 있다. 세례를 돈한테 베푼 바람에 아기가 세계 내 자기 자리를 빼앗겼다는 점에서, 인간의 영혼을 팔아야 이윤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콜롬비아 농민들은 돈이 돈을 낳는 세계를 “부도덕”하다고 봤다. 반면 주식 공부에 뛰어든 한국의 젊은이들은 돈이 돈을 낳는 흐름을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이치로 받아들인다. 대신 이들이 겨냥하는 “부도덕”의 세계란 기관투자자들이 공매도를 일삼는 세계,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금융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는 세계다. 코로나 이후 개미들의 선방이 “부도덕한” 지배세력에 맞선 항거로, “공정한” 사회를 위한 대동단결로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 각지의 젊은이들이 경제위기를 촉발한 월가의 금융 엘리트에 맞서 “우리가 99퍼센트”라며 대대적 시위를 벌였던 게 고작 10년 전이다. 이제 “99퍼센트”는 투자자에 맞서는 대신 스스로 투자자가 됐고, “국가가 납세자의 돈으로 기업을 구제했다”는 당시의 비난을 “내가 투자하는 기업이 부실해도 국가가 구원해줄 거라는 믿음”으로 되감았다. 국가가 청년들에게 기본적인 안전망조차 깔아주지 못한 채 창업이니 혁신이니 바람잡이 역할만 한 헬조선에서 저항의 끝판왕이 등장한 걸까. 이 저항이 지배와 동의어 같기도 하니, 그야말로 자본주의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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