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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김훈의 통곡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 김만권

등록 2020-09-27 16:00수정 2020-09-28 11:49

김만권 ㅣ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작년부터 소설가 김훈이 탄식하고 자주 운다. 처음부터 목메어 울었던 건 아니다. 호소하고 호소하다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김훈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이렇다. “나는 대통령님, 총리님, 장관님, 국회의장님, 대법원장님, 검찰총장님의 소맷자락을 잡고 운다. 나는 재벌 회장님, 전무님, 상무님, 추기경님, 종정님, 진보논객님, 보수논객님들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운다. 땅을 치며 울고, 뒹굴면서 운다.” 왜 김훈은 이리도 통곡하고 있는 것일까?

다름 아니라 매해 죽어 나가는 2400여명의 노동자들 때문이다. 이들이 좀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기업 하기 좋은 나라도 좋지만 노동하기에도 좋은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이렇게 울고 있다. 노동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다 기계에 몸이 찢겨나가고, 공중에서 낙석처럼 떨어지고, 붕괴된 건물더미에 깔리고, 불타는 건물에서 질식해 죽어가는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의 자식들이 여기 있다고, 제발 좀 보아달라고, 그래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말이다. 이미 말했듯 처음부터 이렇게 울었던 게 아니다. 아무리 호소해도 해결의 기미가 없어 이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 시간이 갈수록 해결할 길이 더 요원해 보인다. 중-미 무역분쟁에, 한-일 무역분쟁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까지, 경제를 살려야 하는 주변 요건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기업은 말한다. 너무 많은 규제가 기업을 힘들게 하고 있다고,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그러면 이 위기를 탈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뜻 들으면 맞는 말인데, 한편으론 이런 기만도 없다. 나라의 경제는 기업과 노동, 양자 간 협력의 산물인데 위기만 오면 노동은 사라지고 기업만 남는다. 이 상황에서 노동자는 일자리뿐 아니라 자기보호의 안전장치까지 쉽사리 잃고 만다.

사실 위기 시대의 노동뿐만이 아니다. 김훈은 코로나가 닥치기 이전부터 목을 놓아 울고 있었다. 위기 이전에도 노동 현장에서 안전은 늘 논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김훈이 아무리 울어도 이 문제는 바로잡기 어려운 일이었다. 노동자에 대한 안전장치를 제공하는 것보다 노동자가 죽었을 때 지불하는 비용이 훨씬 더 값싸기 때문이다. 이윤의 극대화가 최대의 목표인 기업에서 노동자는 냉철한 비용의 차원에서 계산될 뿐이다. 안전장치의 제공보다 노동자의 죽음에 지불하는 비용이 더 싸고, 정규직 노동자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었을 때 치를 비용이 더 싸고, 그 안에서도 하청업체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죽었을 때 비용이 더 싸기에, 위험한 노동의 연쇄적 외주화는 당연한 일이다.

값싼 노동력을 위험한 노동 현장으로 내모는 현실 앞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는 대목은 바로 국가의 역할이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목숨값의 서열을 정하고 이에 따라 기업이 움직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에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 그 많고 많은 예 중의 하나가 안전을 무시한 기업에 대한 처벌이다. 2019년 8월1일 한 노동자가 아파트 견본주택 신축 공사장에서 추락해 숨졌다. 안전장비를 설치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이로 인해 노동자는 두개골이 부러졌고 22일 동안 고통받다 세상을 떠났다. 이 기업의 대표는 안전장치를 하지 않은 처벌로 1000만원의 벌금을 냈다. 2018~19년 사이 법원이 공개한 671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1심 판결을 보면, 책임 있는 사람이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1.9%였고, 그 기간은 9.3개월이었다. 절반가량은 벌금형이었고, 평균 벌금 액수는 458만원이었다. 이런 현실에서 더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니 도대체 어떤 조건을 원하는 것일까?

올해 9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정부와 국회가 호응하지 않아 노동자와 시민이 나서 직접 법안을 발의하는 국민동의청원을 개시한 것이다. 이 운동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이렇게 해서라도 노동 현장에서 성실히 땀 흘리는 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노동자의 죽음에 책임 있는 자들은, 지금의 제도 아래 이미 자신이 지불해야 할 비용에 대한 계산이 끝나 있다. 중대재해기업들이 지불해야 할 대가가 노동자의 목숨이란 비용보다 높아지지 않는 한, 김훈이 대신 울고 있는 노동자들의 통곡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에야 비로소 나도 함께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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