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취재한 사실과 자신의 의견을 분리해서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2018년 12월 첫 회동을 취재하러 모인 기자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봉현 저널리즘책무실장 (언론학 박사)
사실 전달이 목적인 기사는 명료해야 한다. 가장 큰 적은 ‘관계자’ 같은 익명 취재원과 ‘알려졌다’처럼 모호한 서술어의 남용이다. 사실과 기자의 주관이 섞였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언론사라면 이런 식의 입사시험 답안지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겠지만, 그들이 생산하는 기사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9월 한 달 <한겨레> 기사를 훑어보아도, 1면 머리에 오른 ‘임차인 보호 등 ‘21개 민생법’ 일괄 통과 추진’(9.10)이나 4면 머리로 쓴 ‘수사팀이 공개 꺼린 ‘추-보좌관 카톡’ 심의위서 “공개하라”’(9.30) 같은 주요 기사가 ‘관계자’와 ‘전해졌다’로만 작성됐다. 이런 형식의 기사는 정보 접근이 어렵고 취재원도 노출을 꺼리는 정치·법조·외교안보 분야에서 자주 눈에 띈다.
모호한 서술어는 언론의 편향을 드러내고, 독자를 가르치려 한다는 느낌을 줘 기사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판단된다’ ‘풀이된다’ ‘점쳐진다’ ‘관측된다’ ‘읽힌다’처럼 행위의 주체가 없는 피동형 서술어로 끝맺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아픈 아들을 군에 보낸 어머니의 안타까움을 호소해 동정 여론을 불러일으켜 보려는 의도로 읽힌다”(9.14),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권력기관 개혁에 다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9.22) 등이다. 언론인 출신 김지영씨는 <피동형 기자들> 이란 책에서 이런 표헌이 검열이 심하던 1970~80년대 언론이 책임지지 않으려 쓰던 기사 작성법이 굳어진 것이라고 밝힌다. 기사에서 ‘풀이하거나 점칠 일’이 있다면 관련 전문가의 입을 빌리는 것이 나은 방법이다.
‘평가다’ ‘진단이다’ ‘지적이다’ ‘전망이다’ 같은 간접인용 서술도 누가 그런 평가나 지적을 하는지 불분명하다. ‘지적이 나온다’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판이 나온다’ 등도 기자의 생각을 일반화하려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주요 부처 각료의 도덕성과 관련한 중요 사안인 만큼 국방부가 사실관계 확인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9.11), “공동조사가 이루어지더라도 각자가 조사한 내용을 서면이나 통신으로 교환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란 관측도 적지않다” (9.28) 등이 그런 예이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알려졌다’ ‘전해졌다’ 같은 간접인용 형식을 빌려 전하는 일은 학생들 작문에도 등장할 만큼 일반화됐다. “김관정 서울동부지검장이 ‘결과에 책임지겠다’며 수사결과 발표를 관철시킨 것으로 전해졌다”(9.30), “ㄱ씨는 동료들에게 수백만원씩 돈을 빌려 2천만원의 채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9.25) 등이다.
‘한겨레 취재보도준칙’(이하 준칙)은 이렇게 “판단의 주체를 분명히 밝히지 않고 서술하면, 기자의 주관이 개입됐거나, 일부 취재원의 입장만 강조하거나, 일부 내용을 과도하게 일반화하는 경우로 오해받을 수 있으므로 될 수 있으면 사용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취재원의 발언을 직접 인용하면서 주관적 서술어를 덧붙이는 것도 삼가야 한다. 기사를 쓰다 보면 불가피할 때가 있지만 ‘주장했다’ ‘압박했다’ ‘암시했다’ ‘선언했다’ ‘꼬집었다’ ‘하소연했다’ 등을 남용하는 것은 개인 블로그 글에 더 어울리는 일이다. “(안철수 대표도) 추경이 대통령의 사재를 털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인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반발했다”(9.15), “‘의대생 스스로 시험을 치르겠다고 입장을 바꾸는 노력을 우선하는 것이 순리’라고 일침을 놓았다”(9.9) 등이 보인다. ‘준칙’은 이런 술어를 쓰면 “기자의 주관과 판단이 개입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므로 될 수 있으면 ‘말했다’ ‘발표했다’ ‘밝혔다’ 등 담담하고 건조한 표현으로 통일하라”고 권한다.
외국 대표 언론은 우리보다 기준이 높다. 언론학계의 ‘좋은저널리즘연구회’가 2016년 국내 일간지 기사 694건을 분석해보니, 무주체 피동형 문장이 국내 기사 하나당 1.19건이었는데 미국 <뉴욕타임스>는 없었고, 일본 <아사히신문>은 0.82건이었다. 또 주관적 술어가 등장하는 빈도도 기사 하나당 1.40건으로 뉴욕타임스 1.22건이나 아사히신문 0.85건보다 높게 나타났다.
취재 현장의 어려움은 짐작이 되나, 바꿔 쓰려 노력하면 달라진다. 주관적 술어를 덜 쓰려 취재원에게 전화 한 번 더 했다면 그만큼 나아간 기사가 나올 것이다. 사실과 의견의 분리가 현실 가능하냐는 철학적 물음이 있다. 기자의 가치 개입을 내세우는 ‘주창의 저널리즘’이 나오는 마당에 객관주의가 미덕이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독자 입장이 되어서 기사를 읽어보면 안다. 기자의 사견이 스며든 ‘눅눅한’ 기사보다 적절한 인용과 증거로 탄탄히 쌓아 올린 ‘바삭한’ 기사에 믿음이 간다는 것을.
bhlee@hani.co.kr
※ 이 칼럼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해서 작성했습니다.
- <피동형 기자들> 김지영 지음, 효형출판 (2011)
- <현장기자를 위한 체크 리스트>,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
- 이나연, ’사실과 의견의 분리/ 기사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라’ <신문과 방송> (2019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