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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 말고] 사는 곳은 달라도 / 박주희

등록 2020-10-11 17:28수정 2020-10-12 14:11

박주희 ㅣ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코로나19가 만든 신조어가 여럿 있는데 ‘돌밥돌밥’도 그 가운데 하나다. 집에서 삼시세끼 챙기는 수고로움을 잘 표현한데다 입에 착 붙는 발음으로 유행어가 됐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날이 많다 보니 아이들 끼니 챙기기가 만만찮은 일과가 됐다.

돌밥돌밥 피로감을 늘어놓다가도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입을 닫게 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점심 한 끼는 학교 급식을 먹었는데 요즘은 그 점심도 혼자 해결하는 아이들이 늘었다. 경제적인 사정으로 결식 우려가 있는 아이들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여전히 양질의 식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올해 결식아동 예산은 2286억원으로 지난해 1734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문제는 실제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느냐다. 지자체 예산으로 18살 미만 아이들에게 지급하는 결식아동 급식카드는 운영상의 문제점이 여러 차례 지적됐다.

이 카드를 쓸 수 있는 업소 가운데 3분의 2가 편의점 혹은 제과점이다. ‘밥’을 먹을 수 있는 일반·휴게음식점은 28%에 그친다. 급식카드를 쓰는 아이들 상당수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컵라면 등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도록 만드는 구조다. 그나마도 지자체별로 편의점에서 결제되는 품목이 달라서 계산대에 물품을 올려놨다가 지정 품목이 아니라서 결제가 거부되기 일쑤였다. 그 순간 머쓱함을 넘은 상처는 고스란히 아이들 몫이다.

위 자료에서 눈에 띄는 점은 급식카드 지원 단가가 지역별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서울 서초구는 단가가 9000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데, 충북 보은군은 4000원으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서 아이들 밥값이 곱절 이상 차이가 난다. 복지부가 권장하는 급식단가는 5000원이고 지자체 203곳의 평균 단가는 5400원이다. 서울 강남구는 8000원, 부산 중구와 기장, 충남 공주, 경남 고성은 6000원이다. 절반 이상이 권장 단가 5000원에 딱 맞췄다. 권장 단가보다 낮은 곳은 보은과 경북 영천(4500원) 두 곳이다.

해당 지자체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왜 지원 단가가 이렇게 낮은지, 사정이라도 있는 건지. 단가 책정에 대한 별다른 설명은 없이 내년에는 5000원으로 인상될 거라고만 했다. 내년에는 권장 단가에 맞추니 문제없다는 식이다. 아이들 먹을거리를 양보하면서까지 챙겨야 할 만큼 가치 있는 사업이 대체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5000원으로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할 만한 음식점은 많지 않다. 그나마 집 주변에 카드를 쓸 수 있는 식당은 찾기 어려우니 아이들은 따뜻한 밥 대신 편의점 식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최근 경기도에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도내 모든 일반음식점에서 급식카드를 쓸 수 있게 됐다. 도가 신용카드사와 손잡고 모든 일반음식점에서 급식 지원카드를 쓸 수 있도록 해 카드 사용처가 3500곳에서 18만곳으로 대폭 늘었다.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식사 메뉴 폭이 그만큼 늘었다. 경기도가 했으니 다른 지역도 관심을 가지고 준비하면 가능하다는 얘기다.

복지부는 편의점 구입가능품목을 구입제한물품만 명시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제한 품목 이외에는 결제가 거부될 일이 없어진다.

어린 형제가 라면을 끓이려다 큰 화상을 입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으며 견디고 있다. 그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큰 빚을 졌다. 두고두고 아파하고 끝까지 책임져야 마땅하다. 사는 곳은 달라도 아이들에게만은 영양을 고루 갖춘 맛있는 밥상을 차려줬으면 한다. 예산 핑계를 댈 문제가 아니다. 형편은 되지만 세심하게 살피지 않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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