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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기본소득, 공짜 점심은 없다 / 홍장표

등록 2020-10-12 16:05수정 2020-10-13 02:42

홍장표 ㅣ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한국 사회는 기본소득 논란으로 뜨겁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제기한 기본소득은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을 분수령으로 급물살을 탔고, 뒤이어 국민의힘도 정강정책 1호로 기본소득을 내걸었다. 기본소득이 여야를 막론하고 국가적 담론으로 부상하면서 백가쟁명의 복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소득 양극화 해법 찾기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기본소득이 학술 논쟁을 넘어 현실 정치의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매달 일정 금액을 조건 없이 지속적으로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기본소득론자들은 생계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인 60만원을 모든 국민에게 차별 없이 매달 지급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매년 360조원의 예산이 소요되는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의 20%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다. 작년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20%임을 고려할 때, 국세와 지방세를 합한 모든 세금을 기본소득에 충당해야 가능하다. 올해 두차례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의 재원 조달 문제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재난지원금은 재정구조조정과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했다. 물론 국채 발행으로 늘어난 국가부채는 위기극복 뒤 해결해야 할 숙제다. 그런데 재난지원금을 한시적으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달 전국민에게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막대한 재원을 나랏빚을 계속 내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본소득의 최대 걸림돌은 재원 조달이다. 알래스카처럼 석유가 나지 않는 한, 대규모 증세가 불가피하다. 만약 360조원을 전부 증세로 충당한다면 세금은 지금의 두배로 올려야 한다. 기존의 현금성 사회수당을 모두 폐지해도 부족하고, 여기에 추가 세수를 더해 재원을 지속적으로 확충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시민단체 랩2050에서는 현금성 사회수당과 소득공제제도를 폐지하면 매달 30만원은 증세 없이 지급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소득공제 폐지는 세율 인상이 없으니 증세가 아니라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다. 기본소득당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대규모 증세를 주장하고 소득세, 부동산 보유세, 환경세, 데이터세, 로봇세 같은 증세 목록을 줄줄이 나열하고 있다. 사회 대개조를 향한 담대한 비전이나,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아득한 훗날의 희망사항을 적은 버킷리스트라는 인상을 지우기는 어렵다.

한편 국민의힘에서는 증세 없이 기존 현금복지제도만 개편해서 하위계층부터 최저소득을 보장하자고 제안하였다. 지난달 윤희숙 경제혁신위원장은 저소득 가구에 대해 중위소득 50%까지 소득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기본소득지원제도를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기초연금, 근로장려금, 자녀장려금 등 기존 현금지원제도를 통폐합하고 상대빈곤기준선인 중위소득 50%를 저소득층의 기본소득으로 보장한다. 기존 현금지원복지제도의 중복을 없애고 그 재원을 활용하면 증세 없이도 소득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안은 선별복지의 연장선 위에 있어서 기본소득으로 부를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그런데 기초생활보장 수준을 대폭 높이고 범위도 확대하는데 과연 추가 재원 없이 가능할까? 만약 제안대로 현금지원제도가 통폐합된다면, 기존 복지 수혜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피해 보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재 근로장려금은 중위소득 50% 이하의 근로빈곤가구뿐 아니라 차상위 가구에 대해서도 지급되고 있다. 그런데 기본소득지원제도로 대체되면 중위소득 50% 이상의 차상위 가구는 더 이상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제안대로 통폐합될 때 기존 복지 수혜자의 피해가 없도록 하려면, 추가적인 재원 투입이 불가피하다. 증세 없는 복지가 허구이듯이, 증세 없는 기본소득지원제도 역시 허구다.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차별 없이 다 주자’와 ‘취약계층의 최저소득을 우선 보장하자’는 복지 논쟁은 필요하다. 앞으로 더욱 치열해지고 엄밀해져야 한다. 그렇지만 줄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소득 양극화 대응을 위해서는 선별복지든 보편복지든 그에 따르는 비용을 누군가 부담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양극화 해법 찾기의 성공 여부는 비용을 함께 부담하려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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