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훈 ㅣ 종교학자·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전공 분야인 종교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20대 초반 시절, 나는 예수에게 홀딱 반해 있었다. 교회나 성당에 다녀본 적은 없었지만, 복음서를 읽는 사이 저절로 예수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내게 예수는 초월성을 너무나 생생하게 경험한 나머지 현실의 정치권력이나 종교적 권위, 시답잖은 위계질서나 차별의식 따위를 우습게 보게 된 호쾌한 인물로 느껴졌다. 신비가인 동시에 혁명가인 그는 로마제국과 헤롯 왕조의 정치지도자들과 유대 제2성전 체제의 종교지도자들을 통쾌하게 풍자하고 비판하였다. 반면 사회에서 멸시받고 차별받는 이들에게는 가장 다정한 친구였다.
나는 그런 예수와 닮고 싶었다. 교인도 아니면서 진보적인 선교단체에 가입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기독교인이 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늘 가까이 있는 교회 공동체를 방문했다. 작은 동네교회나 지방의 대형교회로부터 역사가 깊은 민중교회에 이르기까지 한국 기독교의 다양한 형태들을 접했다. 그러나 30대 초반 즈음에 이르러서는 예수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기독교인이 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로부터 비롯하지도 않은 보수적인 교의와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수호하려고 하는 교회들은 예수보다는 그를 죽인 사람들과 닮아 보였다. 그런 전통을 비판적으로 뛰어넘으려는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의 분투는 인상적이었지만, 나 자신은 내가 물려받지 않은 유산의 부채까지 떠안을 필요가 없다고 여겨졌다.
최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기독교계 사건 하나에 대한 소식을 듣고 나는 안도감과 모욕감을 동시에 느꼈다. 안도감은 그런 비열하고 사악한 종교집단에 남아 있지 않기를 잘했다는 마음이었고, 모욕감은 그런 종교가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예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는 데서 오는 감정이었다. 지난 10월15일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는 인천 퀴어 축제에 연대하고 현장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축복기도를 올린 이동환 목사에게 정직 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판결과 관련된 두 개의 텍스트인 연회의 판결문과 이동환 목사의 입장문을 보면 참담하다기보다는 우스꽝스럽다. 판결문은 이미 성소수자들을 계속해서 축복하고 지지할 것이라고 밝힌 이 목사를 처벌하기 위해 계속해서 그가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정황증거”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 가운데 압권은 이 목사의 교회가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에게 안전한 교회”인 “무지개 교회” 명단에 올라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 기독교에서 적법한 목회를 하려면 목사가 자기 교회를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에게 위험한 장소로 유지해야 하는 모양이다.
이 목사는 판결에 불복하는 입장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땅에 예수님께서 오셨다면, 바리새인들의 온갖 정죄와 비난을 뒤로하고 찾아가셨을 퀴어 문화 축제에 또다시 가서 축복식을 집례할 것입니다.” 나 또한 예수가 다시 온다면 퀴어 축제에 가서 즐길 것이지, 그 옆에서 이루어지는 기독교인들의 혐오 집회에 참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기독교 내 혐오세력을 “바리새인”에 빗대는 것은 그들을 과대평가하는 비유다. 1세기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종종 예수와 논쟁을 하기도 했지만 치열하게 현실과 신앙에 대해 고민하던 분파였다.
혐오 세력에게 더 어울리는 메타포는 호모포비아의 고전으로 ‘잘못’ 알려진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의 소돔 사람들이다. 그들은 롯의 보호를 받고 있던 신의 사자를 단지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집단 린치하려고 했다. 이 이야기에서 ‘동성애’를 읽는 이들은 반성하라. 섹스는 동성 간이냐 이성 간이냐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이 동의해서 하는 ‘성관계’와 지배를 목적으로 강제하는 ‘성폭력’으로 나뉜다. 소돔이 멸망한 것은 동성애가 아니라 차별과 폭력이라는 죄악 때문이었다. 성소수자들을 이방인 취급하며 폭력적으로 그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이들이야말로 소돔의 후예들이다. 여기가 소돔이다. 당신들이 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