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보라 ㅣ 영화감독·작가
“저는 임신중단 경험자입니다. 원치 않은 임신과(피임했음) 그 이후에 경험한 일련의 ×같은 과정에 대해 ‘낙태죄’라는 말이 있는 한국에서 공개적으로 얘기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해야지.”
2020년 10월7일, 정부가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14주까지는 허용하는 법안을 입법예고하자 싱어송라이터 이랑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인용 글을 작성했다.
“저도 임신중단 경험자입니다. 원치 않는 임신과 그 이후에 경험한 일련의 일들에 대해 2016년 10월 #나는_낙태했다라는 칼럼으로 썼습니다. 2020년인데 아직도 낙태죄를 논합니까. 저는 이 땅의 몸의 경험들과 연대합니다.”
누군가 이어받아 계속해서 이야기했으면 했다. 1971년 프랑스에서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를 포함한 여성 지식인 343명이 “나는 낙태했다”고 선언하며 임신중단 합법화 운동을 했다. 자신들이 법을 어겼으니 처벌하라며 항의했고 검찰은 사법처리를 포기했다. 1974년, 임신중단은 프랑스에서 합법화되었다.
#나는낙태했다 해시태그로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몇몇 이들이 익명 혹은 실명으로 임신중단 경험을 풀어냈고 그 글들은 여러차례 공유되었다. 성폭력 피해를 공유하며 사회적 변화를 이끈 ‘미투’(MeToo) 운동과 비슷한 맥락의 연대라며 인용해도 되는지 묻는 질문부터 임신중단 경험자의 시각에서 입법예고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묻는 인터뷰 요청까지 매체의 연락이 이어졌다.
2016년 <한겨레>에 썼던 칼럼은 끌어올려져 주목을 받았다. 4년 전, 보신각 앞에 검은 옷을 입고 모여 낙태죄 폐지를 외치던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쓴 글이었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글이라 생각했는데 낙태죄를 공고히 유지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정부의 결정으로 2020년 지금, 너무나도 유효한 칼럼이 된 것이다. 착잡했다. ‘낙태죄 폐지’를 위해 우리가 해왔던 일들은 다 무엇이었나.
누군가 말했다. 임신중단 경험자들의 #나는낙태했다 해시태그를 보며 복잡한 심경이라고. 몸과 마음이 너덜해진 경험을 구구절절 토해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냐고. 그렇다. ‘낙태는 죄’라는 인식이 만연한 사회에서 임신중단 경험을 말하고 읽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죄책감과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 감정은 임신중단 경험을 ‘피해’의 프레임에 가두고 문제의 핵심을 가린다. 임신중단과 관련한 논의는 “나의 몸은 나의 것”이라는 담론을 넘어 무엇이 권리를 억압하며 누가 감정을 강요하고 있는지 묻는 것이어야 한다. 박이대승의 책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는 “임신중단은 모두의 문제”라고 말하며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권리란 무엇인가? 법은 무엇을 인간으로 규정하는가?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확장된다. 모두의 약속인 법은 누구를 보호할 것인가. 그 법이 보호하는 권리란 무엇이며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나의 임신중단 경험을 담은 글을 쓰고 #나는낙태했다 해시태그 운동을 제안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아주 오랫동안 낙태가 ‘죄’였기 때문이다. 죄의 영역에서 수많은 몸의 기억은 말해지지 못한 채 어딘가를 떠돈다. 불안하고 두렵고 겁이 나고 무섭고 갑갑하고 막막하고 답답하고 아찔하고 죄스럽고 초조하고 아뜩하고 암담하고 조마조마하고 캄캄한 감정. 그런데 왜 임신중단은 그런 감정과 함께여야 하는가? 누가, 무엇이 재생산을 둘러싼 감정을 강요하고 단속하는가?
어떤 경험은 말을 하고 나면 명확해진다. 사라지기도 하고 더 선명해진다. 그 주위로 몸의 경험이 모여든다. 이것은 ‘죄’가 아니라 ‘권리’를 침해당한 이야기이며 수치심과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강요당한 이야기다. 나는 임신을 지속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임신중단을 한 후 거짓말같이 입맛이 돌아왔다. 그건 행복한 임신중단이었고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지킨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