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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부동산, 가격이 사라진 시장 / 김경락

등록 2020-10-27 16:54수정 2020-10-28 02:36

“호가든 실거래가든 모두 믿을 수 없어요….”

김경락 ㅣ 산업팀장

경기도 고양시 일산. 옆집 박씨는 내년 1월 전세 만기를 앞두고 집을 넓혀 이사하려 한다. 내년에 중학교에 입학하는 큰딸과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는 아들의 ‘자기 방 등쌀’을 이젠 견디기 어렵다. 두달째 네이버 부동산에 올라온 정보를 살펴보고 부동산 중개소에 전화도 걸고 찾아도 가봤지만 결심이 딱 안 선다. 부부는 ‘결정장애’에 걸린 듯하단다.

그가 마주한 상황은 이렇다. ①호가는 뜀박질. 2~3개월 새 마음에 둔 30평 초반대 주택단지는 물론 그 주변 주택 호가까지 1억~1억5천만원가량 올랐다. ②거래는 실종. 실거래 기록은 두달여 전 2건이 전부다. ③갭(Gap)은 확대. 두달 전 실거래가와 현재 호가 간 차이가 1억원이 넘는다. “거래 없는 상황에서 호가를 액면 그대로 믿어도 되는가.” “덜컥 (호가대로) 계약을 했다가 2년 뒤 보증금 떼이는 건 아닐까?” “계약을 미뤘다가 내년 초 전세가가 더 뛰면 낭패인데….” 의문이 꼬리를 물수록 불안은 커져만 간다고 박씨는 토로한다.

며칠 전 한국감정원의 시세조사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①+②+③ 상황에서 시세를 잡는 감정원의 고충도 클 것이라고 봐서다. 감정원은 케이비(KB)국민은행과 함께 양대 시세조사·공표 기관이다. 감정원은 실거래가를 기준점 삼아 주변 부동산 중개업자가 제시하는 ‘자문 가격’ 등을 토대로 시세를 내놓는다.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매수자와 매도자 간 생각하는 적정 가격 차이가 너무 커요. 평행선 같다고 할까요.” “거래가 적은 신축 단지는 준공된 지 1년이 되어도 시세 공표를 못 하기도 합니다.” “간혹 실거래가 있어도 증여 거래일 수 있어 해당 거래를 시세 준거로 잡기도 위험해요.” 감정원 시세 추정과 통계를 문제 삼으려 전화했던 줄 알았는지, 궁금한 것 이상을 그는 풀어놨다. 요지는 ④(일부 지역·주택단지) 시세의 잠적!

동네 부동산 중개업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요즘처럼 중개하기가 어려운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집 찾아봐달라는 사람은 줄을 섰고, 나온 매물도 제법 있지만 정작 거래 성사는 안 된다는 얘기이다. ㅅ공인 대표는 “전세 계약은 계약서 쓰기 전날 엎어지기도 하고, 매매 물건은 (시장에) 나왔다가 다시 거둬들이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생각이 너무 다르니 (중개업자로서)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주된 기능 중 하나는 가격 발견이다.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간 용인할 수 있는 ‘제값’이 곧 가격이라고 한다면, 이 가격은 ‘보이지 않는 손’ 시장이 찾아낸다. 부동산 시장의 가격은 ‘시세’로도 불린다. 개념상 시세는 ‘거래 가능 가격’이며, 은행들이 대출을 내어줄 때 필요한 담보가치 산정의 기준점이기도 하다. 시세의 잠적은 현재 부동산 시장이 ‘가격 발견’이라는 고유의 구실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런 기현상이 등장한 이유는 정책 당국자와 근래 들어 부쩍 정책 발언이 많은 정치권이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피가 흐르지 않는 무생물인 시장이 게을러서 일하지 않는 것은 아닐 테니.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어떤 지표가 좀 더 시장을 정확히 반영하는가를 두고 신경전이다. 각자 유리한 통계를 앞세워 상대를 공박한다. 급기야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공공 통계 개발”을 정부는 언급하고 나섰다. 모든 경제 현상과 문제가 ‘정치화’되는 오늘날 상황을 염두에 두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또다른 논란이 일까 걱정이 앞선다. 잠적한 시세를 어떻게 통계가 발견할 수 있다는 걸까. 통계 개발하는 동안 호가와 실거래 간의 차이를 메우는 과정에서 나타날 충격과 혼돈이 두렵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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