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경 ㅣ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지난 8월 작년 고용노동부의 구직활동지원금을 받았던 전국의 청년 27명을 만났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사회 진입을 준비하고 있는 이는 그것대로, 이미 취업한 이는 또 그것대로 여러 어려움이 있으리라 짐작하며 만났지만, 현실은 훨씬 가혹했다. 그들을 만난 이후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만났던 청년들 중 일부는 ‘이미’ 취업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벌써’ 실직자가 된 사람과 ‘아직은’ 취업 상태에 있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그들은 2020년 2월 ‘코로나19’ 발발 이후 매출이 급감한 기업들이 “막내부터 자른다”고 했다. “매일매일 사장실에서 고성이 터져 나오고 무언가 날아다니고 옆자리가 하나씩 비어나가는” 직장에서 ‘이제 곧 내 차례가 오겠구나’ 생각하던 청년은, 그날이 오던 날 ‘내 차례’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수십곳에 원서를 넣었는데 “과거에는 전화라도 오더니 이젠 전화조차 오지 않는다”고 했다. ‘코로나19’는 산업구조 변동 속도를 눈썹이 휘날릴 만큼 가속화하고 있었다. 여행, 숙박, 음식, 관광, 항공, 운수, 건설기계, 대면서비스 업종에 들어가 있는 ‘막내’ 노동자인 청년들은 ‘벌써’ 잘렸거나 ‘곧’ 잘릴 상황을 위태롭게 버텨내고 있었다.
취업 준비를 하다가 ‘코로나19’를 맞닥뜨린 청년들에게 미친 산업구조 변동 여파는 더 심각했다. 몇년에 걸쳐 어학자격증을 따고 항공정비사 자격증을 따고 네일아트 자격증을 따면서 취업 준비를 했던 청년들은, 굳게 닫힌 취업 시장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신규채용 공고는 뜨지 않고 가끔 뜨는 공고는 경력직만 찾는다. 몇달 기다리면 예전처럼 신규채용 시장이 열릴까? 아르바이트나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면서 이 시간을 버티면 기회가 올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빨리 진로를 변경해서 다른 분야를 알아봐야 하나? 그럼 뭘,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다른 업종으로 취직을 하려면 새로 책도 사고 학원도 다니고 자격증도 따야 하는데, 그 시간 동안은 무슨 돈으로 버티지?
누구도 그들에게 앞으로 산업구조가 이렇게 변할 테니 ‘당장 진로변경을 하라’ 혹은 몇달만 기다리면 채용 공고가 뜰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누가 이 거대한 변동의 방향이나 속도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겠는가. 물어볼 곳도 없고 물어봐야 답도 나오지 않는 시간, 판단은 순전히 그들의 몫이다. 한 청년들은 “절망의 깊이가 다르다”고 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희망 진로로 노력해보다가 더이상 나이가 들어 어렵다고 판단하면 ‘눈높이를 낮춰서’ 직장을 구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것이다. 1~2년 지나 경기가 회복되어도 청년들은 그만큼 더 나이를 먹는다. 신규채용 시장에는 기간 만료자가 되고 경력직도 아니니 경력직 채용 시장에 들어갈 수도 없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은 청년들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시장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가파르고 깊은 전환의 계곡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떤 청년은 계곡 입구에서 발을 구르고 있고 또 다른 청년은 이미 계곡으로 발을 디뎌 저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 이들이 계곡 이편에서 저편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야 할 책임, 이미 떨어져 내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올라올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들어야 할 책임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그들이 아닌 이 사회가 함께 져야 한다. 지금 누구도 ‘코로나19’ 이후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확언할 수 없다는 것, 누구도 이 변화 속도를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그리고 당장 사회안전망을 대폭 확충하고 과감히 재정을 풀고 조금이라도 안전한 시장, 최소한 일하다가 죽지는 않을 시장을 만들어내야 한다. 과거의 제도, 생각, 관습에 얽매어 이리저리 잴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