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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 말고] 어쩌면 비대면도 괜찮은지 몰라 / 이나연

등록 2020-11-08 11:58수정 2020-11-09 02:38

이나연 ㅣ 제주 출판사 ‘켈파트프레스’ 대표·미술평론가

코로나19 이후 인류가 사람을 대면하는 방식이 변하고 있다. 얼굴을 보고 말할 때는 코와 입에 마스크가 덮여 있다. 코와 입이 보이는 맨얼굴을 마주하는 경우는 온라인상에서 컴퓨터나 휴대폰 카메라를 볼 때뿐인 듯하다. 물론 마스크 보급과 착용이 꽤 잘 적용되고 있는 한국의 경우를 말하고 있다. 직접 사람을 대면하는 동안 상대방의 표정이나 입을 읽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된 지 오래다. 비대면 시에는 역으로 평소에 나는 보지 못하던 내 얼굴을 보게 된다. 타인을 두고 말을 하고 있는 나를 이렇게 화면상으로 대면하게 되는 일이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새로운 거울단계인 모양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직접 대면을 할 땐 자신보다는 타인을 보게 되고, 한 시야에 담을 수 있는 타인의 얼굴은 주로 한두명에 한정되는데, 비대면 세상에서는 한 화면에 적게는 4~5명에 많게는 20명이 넘는 얼굴들을 동시에 보는 게 가능해진다. 그리고 나조차, 그 많은 이들 중 한명으로서 화면에서 말하고 있다. 처음으로 거울로 자신의 독립된 모습을 보고, 자기 외의 타자와 자기 밖 세상에 대한 개념이 생기는 막 태어난 아이처럼, 우리도 새삼 모니터 속 내 모습을 보며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지금과는 다른,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간다.

지난 10월에 전국 100여명의 체인지 메이커들과 함께하는 ‘인스파이어드’라는 행사에 참여했다. 사회 각계각층의 활동가, 사업가, 기획자들 100명이 모여 해마다 제주에서 2박3일간 쉬기도 하고 조직 밖 이들과 교류도 하기 위해 2016년부터 시작한 집단 휴가다. 올해는 지난 참여자 중 100명의 신청자를 추려 비대면 휴식을 취했다. 행사 전에 보내온 소포에는 2일간의 비대면 프로그램 중 먹을 간식부터 갈아입을 2장의 티셔츠 외에 실로 다양한 물품이 들어 있었다. 100명이 모두 오프닝 인사도 하고, 소모임으로 나뉘어 그 안에서 심화된 이야기도 하고, 프로그램에도 자유롭게 참여하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내 사적인 공간에서, 컴퓨터를 매개로 2일간의 행사에 참여한다는 게 흥미로운 감각을 일깨웠다. 그것도 강제된 일이 아니라 휴식을 말이다. 애초 직접 만나기 위해 제주로 이동하고 스케줄을 조절하고 2박3일간 한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부딪히며 치러지던 행사가, 굳이 만나지 않고도 연장된 형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였다. 우리 이젠 정말 직접 만나지 않아도 괜찮은 거 아닌가?

나도 기후위기를 주제로 섹션 하나를 만들어 현대미술에서 예술가들이 기후위기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다른 나라와 다른 영역에 있는 이들이 어떤 의식을 가지고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는지를 공유받았다. 대략 8명이 한 화면에서 비슷한 화면 크기를 공유받아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데, 지구가 딱 이 모양으로 평평해진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각자의 크기대로 각자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해내며 살고 있는 모습이 모니터 비율의 사각형의 얼굴들에서 확인됐다.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중요한 지점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너무 많은 생산을 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한다는 점이었다. 옷부터 먹거리까지 넘치는 모든 것, 그리고 그것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다한 활동들, 그들이 이동하는 지나치게 먼 거리들. 코로나19는 그 활동들을 잠시 멈추게 했고, 꽤 많은 날들을 미세먼지 없이 보내는 선물을 줬다. 당장 이 행사에 참여한다고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모두 이동했을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꼭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모두에게 평등한 사각형의 틀을 보면서, 어느새 새로운 소통방식에 적응하고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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